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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글쓴이 : 클매니아 날짜 : 2019-06-10 (월) 20:10 조회 : 3327 추천 : 7  

 

 

한화빌딩 앞에 있는 베를린광장의 시설 안내문.

 

베를린시의 상징인 곰상에 그려진 브란덴부르크문과 베를린 시민들의 모습.

 

서독 측 베를린 장벽.

 

동독 측 베를린 장벽.

 

 

 으레 추리소설이라면, 그것도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다룬 추리소설이라면 통속적인 흥미 본위 의 저급한 소설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영국의 작가 존 르 카레의 이 소설은 영국 추리작가협회상, 서머셋 모옴상, 미국 추리작가협회상 (에드가 알란 포우상)을 수상한, 스파이 추리소설의 고전이 된 작품이다.

 동서 진영의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 동독에서 활약하던 서방측 밀정 카를 리메크가 동베를린을 탈출하다가 사살되자 영국 정보부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정보부의 고위 간부이고 이혼한 처자에게 위자료를 다달이 지급하며 독신으로 살고 있는 50세의 아일랜드계 영국인인 알렉 리머스를 좌천시킨 후에 해고하고 그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막일을 전전하면서 폐인으로 살다가 외상 문제로 슈퍼마켓의 주인을 때려서 감옥에까지 가는 연극을 하게 만든다.

 출옥하자 동독의 밀정이 영국 정보부의 의도대로 그에게 접근하여 그는 변절의 대가로 거액을 제시받고 변절이 진의인지와 국가 기밀을 캐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1차 조사를 받고 동독에서 동독 정보부의 제2인자인 피들러에게 2차 조사를 받게 된다.

 조사를 받으면서 리머스는 영국 정보부가 지시한대로 동독 정보부의 제1인자인 문트를 제거하기 위해 그가 서방 측 이중간첩인 듯한 정황 정보를 여러가지 흘린다. 그리고 문트가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간첩 혐의를 받아서 체포되기 직전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영국을 탈출한 적이 있는데 이때 영국 정보부와 접촉해서 그때부터 이중간첩이 됐으리라는 혐의를 받게 한다.

 이런 정황을 알게 된 문트는 리머스와 피들러를 체포하고 이 와중에서 리머스는 동독 감시원 한 사람을 죽이게 된다.

 결국 청문회가 열리게 되고 피들러는 문트의 이중간첩 혐의를 발언하지만 문트 측 변호인인 카르덴은 리머스가 영국 정보부에서 해고되어 도서관에서 잠시 근무할 때 공산당원인 20대 초반의 여직원 리즈와 사랑을 하게 된 후 슈퍼마켓 주인을 때리기 전날 밤 이별을 예고했었고 그가 감옥에 간 후로 영국 정보부의 동료들이 그녀를 물질적으로 도와준 사실을 밝혀내고 동독으로 유인한 리즈를 증인으로 내세워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이런 사실들을 증언하도록 만든다.

 결국 리머스의 거짓 귀순과 문트를 제거하려는 영국 정보부의 공작이 밝혀져 오히려 피들러가 몰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실은 문트가 이중간첩임을 감지한 피들러를 제거하기 위해 영국 정보부가 꾸민 역공작에 리머스는 농락당한 꼴이 되지만 한순간 리머스는 이 잔인한 트릭의 전모를 명석하게 직감하게 된다.

 리머스와 리즈는 문트와 그의 수하들에 의해 동독을 탈출하게 되고 동베를린에서 장벽을 넘게 되는데 리머스가 장벽에 올라 리즈를 끌어올리려는 순간 서치라이트가 탈출 현장에 집중되면서 일제 사격이 가해져 리즈는 즉사하고 만다. 리머스는 사다리를 타고 도로 동베를린 쪽으로 내려가서 리즈의 죽음을 확인하고 동베를린측 초병들의 사격을 받게 된다. 죽어가면서 그는 자신이 작년에 이중간첩 카를 리메크와 접선하러 서독의 고속도로를 달릴 때 두 대의 대형 트럭 사이에 끼어들어 처참하게 찌그러진 소형 승용차와 그 안에서 사고 직전에 신나게 손을 흔들고 있었던 네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결국 그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만 것이다.

 여기서 리머스의 행동은 전혀 이념적이거나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다리를 도로 내려간 것은 비인간적이고 잔혹, 야비한 스파이의 현장 업무에서 은퇴하여 업무의 성공 보수와 연금을 받으며 사랑했고 적진 속의 목숨을 위협 받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한줄기 희망으로 남몰래 간직하고 있었던 한 여인에 대한 끈질긴 사랑에의 집착 때문이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사상보다 개인이 중요하다는 관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염세적인 분위기 속에 주인공의 의식이 흐름이 국가조직과 국익이라는 비정한 명분에 의해 소리 없이 말살되는 개인 (정보원)들의 희생과 결부되고 야만적인 생존 본능이 부각되면서 반면에 한 여인에 대한 끈질긴 사랑의 애착과 그로 인한 죽음이라는 결말이 전혀 상반되는 인도주의적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추리소설치고는 굉장히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으로 이미 28년 전에 읽은 적이 있었지만 다시 한 번 읽어 보니 정독하는 감회가 깊었다.

 여기에 동베를린의 장벽을 넘다가 주인공과 연인이 사살되는,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을 옮겨 본다.

 

 벽까지 몇 걸음 남겨 둔 순간 광선은 두 사람을 떠나 북쪽으로 달려갔다. 주위를 완전한 어둠이 감쌌다. 리머스는 리즈의 팔을 잡고 덮어놓고 뛰었다.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돌진하니 갑자기 꺼칠꺼칠한 신더 (석탄 재) 벽돌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만져졌다. 벽이다! 얼굴을 들어 보니 철조망과 그것을 누르고 있는 갈고리쇠가 어디 있는지 짐작이 갔다. 벽면의 벽돌에 산악인이 쓰는 피턴 비슷한 금속 쐐기가 박혀 있었다. 가장 높은 것을 손에 잡고 리머스는 재빨리 기어올라 순식간에 벽 위로 올라갔다. 쇠줄의 낮은 부분을 힘껏 잡아당기니 이미 절단되어 있어서 간단히 떨어져 나갔다.

 "빨리!" 서두르며 낮게 외쳤다. "리즈, 올라와."

 그 자신은 벽 위에 배를 깔고서 뻗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다리가 첫 번째 쇠못에 걸렸다고 짐작하고 서서히 끌어올리려 했다.

 갑자기 전세계가 불바다에 떨어진 듯했다. 위에서, 좌우에서, 모든 곳에서 강렬한 광선이 집중되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너무도 뚜렷이 비췄다.

 리머스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돌리고 리즈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 그녀의 몸은 허공에 떠 있다. 발이 미끄러졌나? 목청껏 소리쳐 보고는 팔을 잡아끌었다. 번쩍거리는 빛으로 눈은 쓸모가 없다. - 혼란한 색채가 미친듯이 춤추고 있을 뿐이다.

 신경질적으로 사이렌이 울리고 미친듯한 호령과 고함소리가 섞여서 날고 있다. 벽에서 반이나 무릎을 내밀고 리머스는 그녀의 두 손을 1인치씩 끌어올렸다. 자기 자신도 굴러 떨어지기 직전인데.

 그때 일제사격이 시작되었다. -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의 손에 그녀의 경련이 느껴지고 그 가느다란 팔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벽의 서쪽에서 영어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뛰어내려, 알렉! 뛰란 말이야!"

 이제는 모두가 거침없이 소리 질렀다. 영어, 불어, 독일어. 바로 가까이에서 스마일리의 소리도 들렸다.

 "여자는? 여자는 어디 있어?"

 리머스는 광선을 손으로 가리고 벽 밑을 내려다보고는 겨우 그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움직이지도 않은 채 나뒹굴어져 있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그는 천천히 피턴 사다리를 내려갔다. 퍼붓는 비로부터 그녀를 지키려는 듯이.

 다음 사격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호령을 하는 자는 있었지만 누구 하나 발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최후의 총탄이 그를 붙잡았다. 두 발인가 세 발. 리머스는 버티고 선 채 투우장에서 눈이 멀어버린 황소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쓰러지면서 그는 보았다. 대형 트럭 두 대 사이에 끼어 여지없이 찌그러져 버린 소형차를. 신나게 창문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던 아이들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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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동동 2019-06-10 (월)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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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동동 2019-06-10 (월) 22:34
오랜 만에 책장에서 꺼내서 오늘 밤에 읽어봐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기억나게 해 주셔서.
영화는 과거 이토에서 다운받아 한 번 봤어요
리차드 버튼의 눈빛 연기 강렬합니다.
그리고 영화 배경의 오랜된 구닥다리시설물이 정겹네요. 나이가 들어서 보니까.
     
       
글쓴이 2019-06-11 (화) 13:06
아, 저도 그 영화가 하드에 저장돼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번 찾아 보고 있으면 봐야겠네요.
아기포메 2019-06-11 (화) 09:22
베를린 장벽하면 떠오르는 책.
소설이 참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더랬죠. 영화도 있었군요.
     
       
글쓴이 2019-06-11 (화) 13:10
1990년에 독일이 통일됐으니 벌써 29년이 지났군요.
우리나라는 언제나 통일이 될지 원...
소설이 참 좋았는데 영화도 한번 찾아 봐야겠네요.
티모33 2019-06-11 (화) 14:49
놀랍게도 저 베를린 벽에 그라비티한다고 색칠하고 튄 새끼가 잡혔음,
심지어 자랑스럽게 sns도 함...

그라비티가 예술은 예술인데 할 수 없는 장소에서 하니 양아치 취급을 받는게다.
     
       
글쓴이 2019-06-11 (화) 16:55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너만오면젖절 2019-06-12 (수) 00:02
예전에 본 기억이 있는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네요.
장르소설만 보다가 이전에 본 일반소설 생각해보니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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