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죽음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카뮈가 1936년에서 1939년 사이에 집필한 것으로 추정되는, 실질적인 처녀작에 해당하는 소설로 카뮈가 발표를 기피해서 1960년에 카뮈가 자동차 사고로 죽은 지 11년이 지난 1971년에야 출간된 소설이다.

 주인공 메르소는 애인이 많은 아름다운 처녀 마르트와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즐기는데 그녀에게서 그녀의 애인들 중의 한 사람인 자그뢰스를 소개 받는다. 자그뢰스는 젊었을 때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됐지만 전쟁으로 인해 양다리를 잃어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대소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중증의 장애인이다.

 메르소는 자그뢰스와 친해져서 그의 집을 자주 방문하게 되고 그의 금고에 그가 자살을 대비하여 써 놓은 유서와 막대한 돈다발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날 메르소는 자그뢰스가 소지하고 있는 권총으로 자그뢰스를 쏘아 죽이고 나서 자살로 위장한 후 금고에서 한 뭉치의 돈만 남겨두고 거액의 돈을 챙겨 유유히 사라진다.

 메르소는 마르트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다니던 회사에 휴가원을 낸 후에 감기로 열이 있는 몸을 이끌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유럽 여행을 마친 메르소는 알제에 있는 젊은 세 여자 친구들을 찾아가서 그녀들과 사랑을 나누며 젊음을 즐긴다.

 그리고 메르소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집을 사서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뤼시엔과 결혼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여자 친구들과 산에 오르게 되는데 하산할 때 졸도하여 의사로부터 심각한 병이 있음을 알게 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난 후에 앓다가 뤼시엔의 옆에서 아침의 바다를 바라보며 숨을 거둔다.

 완전 범죄로 친구를 죽이고 그의 재산을 가로채서 부유한 생활을 하고 미인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갑자기 병으로 죽는다는 줄거리인데 돈이 많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지론이 비윤리적인 살인강도 행각과 엇박자를 이루면서 부조리한 삶의 한 모습을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

 작품의 분위기가 지니고 있는 비윤리성과 탐욕적인 인생관 때문에 카뮈가 발표를 기피한 듯한데 문장의 아름다움은 '이방인'보다는 못하지만 여전히 끈끈한 감성에 찬 필치를 견지하고 있다.

 카뮈의 미발표 처녀작인 이 소설은 유작으로 사후에나 발표됐는데 카뮈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하다.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 소설은 아니지만 돈이 많아야 행복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긍정하면서도 시니컬하게 비꼬아 놓은, 숨은 의도가 엿보인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돈이 많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상식적인 속설에 대해 이를 속물근성이라고 비난하는 가치관을 부정하는 역설적인 태도를, 자그뢰스가 메르소에게 하는 말에서 보여준다.. - 소위 엘리트라는 어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서 돈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속물근성을 갖고 있어요. 그건 바보스럽고 그릇된 생각이에요. 어느 모로 보면 비겁하기도 해요.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를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지만 가난한 지식인의 위선은 이 진실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여자, 여행과 음식을 즐기면서 쾌락적인 행복을 추구하려는 태도는 알제의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라난 카뮈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 눈에 띠게 많이 나타나는 이런 인생관은 그의 어린 시절의 뼈저린 체험에서 심신에 배어 우러나온 것이며 이런 와중에서도 자기애에서 비롯된 예술혼이 인류애로 승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인 '행복한 죽음'이 수긍되는 맨 끝 문장을 여기에 옮겨 본다. - 그리고 그는 수많은 돌들 가운데 섞여 있는 돌이 되어 가슴 가득한 희열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세계의 진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