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암의 수호지 축약본

 중국의 4대 기서 중의 하나인 시내암 의 수호지 는 그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축약본이나 만화를 통해 접한 분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1970년대에 일간스포츠에 연재됐었던 고우영의 성인 극화는 지금도 가끔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거리들 중의 하나다.

 일간스포츠를 통해 성인 극화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한 - 그가 창안한 장르인지는 모르겠지만 - 고우영은 올 봄(2005년)에 세상을 떴지만 시립도서관에 가도 그의 성인 극화는 한 질 정도는 비치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우영이 일간스포츠에 심혈을 기울여 연재한 고우영 수호지 는 연재 중에 한 권의 주간지 분량으로 그 당시에 잘 팔렸었던 주간 경향, 선데이 서울 등의 성인용 주간지들과 함께 서점이나 노점의 가두판매대에 진열되어 인기리에 판매됐었다.

 어떤 때에는 너무 잘 나가서 며칠 만 사기를 미루면 가두판매대에서 사라져 버릴 지경이었으니까...

 성인 극화라서 미성년자에게는 판매 금지인 출판물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으지는 못 했지만 한 권, 두 권 정성껏 모아서 수십 권을 모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몇 년 후에는 보관하고 있는 게 신경이 쓰여서 버리고 말았지만 그 만화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과거를 추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가끔 후회도 든다.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게 반금련과 서문경, 무대, 무송의 색정과 간통, 복수에 대한 이야기고 탐관오리들의 전횡과 살의의 마수를 피해 양산박으로 모여 든, 출중한 무예의 호걸들의 무용담과 난세를 살아가는 지사들의 깊은 한숨이다.

 지난 달에 우연한 기회에 세 권으로 된 축약본을 읽게 됐다.

 세 권이라고는 하지만 삽화가 많고 활자가 들어차지 않은 공간이 많아서 한 권 분량 밖에 되지 않는 듯했고 아주 간략하게 축약된 다이제스트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만화로 본 수호지 에서는 중간에 보기 시작하고 중간에 구독을 중단해서 전체적인 흐름과 결말을 알 수 없었지만 이 책에서는 간략하나마 중요한 줄거리와 결말을 알 수 있었으니 수호지 라는 대하소설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은 충족된 셈이다.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자심했었던 송나라 때에 강직한 성품으로 탐관오리들의 미움을 산 주인공들은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가다가 귀양길에 탐관오리의 지시에 의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정당방위로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죽이는 등의 사연으로 양산박에 은거하게 된다.

 마적이나 탐관오리들의 세력과 맞서 싸우기도 하던 이들은 마음에 드는 쓸 만한 인재들은 계교를 써서 자기들 편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세력을 넓혀 108명의 호걸이 양산박을 근거지로 관군들도 위협할 정도로 크고 무서운 세력을 이루게 된다.

 첫째 두령 조개가 피살된 이후로 송강을 두 번째 우두머리로 앉힌 양산박은 송나라 조정으로서는 상당히 골치 아프고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조정에서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계책을 써서 중원을 침략하려던 거란족의 요나라를 관군들과 양산박의 세력을 규합하여 평정한다.

 그리고는 산동의 송강과 함께 송나라의 황제가 내부의 반란 세력으로 근심을 갖게 만드는 회서, 강남, 하북의 반란 세력을 진압하여 모두 평정하고 나니 양산박의 호걸들은 쉴 틈 없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삼분의 이가 전사하기에 이른다.

 결국 양산박의 충절로 인해 외환과 내란의 기운을 모두 없애게 된 송나라 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그들에게 큰 벼슬을 내리려 하지만 간신들은 그들이 득세하여 자신들이 내몰리게 될 것을 두려워 하여 전공에 크게 못 미치는 벼슬을 내리게 주청하고는 어명으로 어주를 내려서 그 술에 독을 타서 송 강에게 그 자리에서 마시게 한다.

 결국 간신들에 의해 독살을 당하게 된 송강은 108 호걸들 중의 하나인 흑선풍 이규 - 그의 성품은 삼국지의 장비보다 훨씬 더 거칠 고 단순하고 과격하며 적당한 명분만 있으면 사람들을 무수히 살상하기를 꺼리지 않는 포악한 성격이다 . - 가 자기가 죽으면 양산박의 세력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켜 양산박의 충의정신을 훼손시킬 게 두려워서 이규를 불러 그도 독주를 마시게 하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송강과 이규는 울면서 죽음을 받아들인다.

 양산박의 두령들은 작은 벼슬을 받고 뿔뿔이 흩어져 각처로 내려가거나 간신배들의 모함을 피해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수호지는 이렇게 절세의 충절을 보이고도 비극적인 결말을 맺지만 후수호지 에서는 살아남은 두령들이 다시 전공을 세워서 큰 벼슬을 받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고 한다.

 중국인의 대륙적인 민족 기질을 엿볼 수 있는 호방한 대하소설이다.

 산적과 충의라는 상반되는 개념이 상호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파란만장하게 전개되는 이 소설은 산적이었다는 원죄 때문에 충성을 다 하고도 비극적인 최후를 마치는 두령들의 영웅스럽지만 지난한 삶들이 바로 눈 앞에 보일 듯이 선명하게 전개된다.

 특히 끝내 간신배에 의해 독살되고 마는 송강의 최후는 이 소설의 가장 의미심장한 대미라고 할 수 있겠다.

 난세는 영웅에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하는 것이다.

 이 축약본은 120회본인 "충의수호전전( 忠義水滸全傳)"을 중국 본토 출판사에서 범부(范夫) 편저로 펴 낸 것을 한국의 출판사인 중국어문화원에서 원종민의 번역으로 2000년도에 출판한 책임을 참고로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