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로 압도한다> 하차평

개인적으로 우명 작가님 글을 정말 좋아하고, 이북으로 거의 다 소장 중입니다.

<회귀로 압도한다>도 처음엔 아주 즐겁게 읽었고요. 

회귀 수십 년 전부터 준비기간을 가진다는 소재가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초반엔 그에 부응하는 퀄리티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백 편이 넘어가면서 갈수록 흥미가 떨어져가네요.

끊임없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고, 가끔은 뒷걸음질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최근 에피소드 구성을 볼까요.

- 한국 정치 관련 에피 (대선주자들이 쥔공의 총애를 다툰다던가... 법 개정에 관여한다던가...)

- 한국 연예계 에피소드 (아이돌... 한류... 저작권... 수익... 어쩌고저쩌고...)

- 한국 프로게임단 창단 및 리그 창설 주도

- 한국 군대 내부 비리 혁파

- 매년 하던 그 쑈 (안드로이드 업그레이드가 어쩌고, 그래픽 발전이 어쩌고, 디자인이 어쩌고, 매년 반복 -_-ㅋ)

- 안정환 선수 한 명을 위해 EPL팀 구입

등등등등.

초반의 속도감은 다 어디로 갖다버렸는지 갈수록 스토리 전개는 느려지고 

분량채우기용 신변잡기성 에피소드, 사이다 에피소드의 비율만 올라가고 있는데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기존에 없던 혁신을 일궈내기는 커녕 

원래 역사에 있던 거 적당히 변형해서 따라하기 바쁩니다.

그러면서 원 역사의 개발자에겐 후한 보상 주면서 생색내고...

뭐 좋은 법률, 제도 몇 개 도입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이 그나마 혁신이라면 혁신이고...

수십년 동안 회귀를 준비했다면서, 

기억의 궁전이라는 개사기성 정보저장능력까지 갖춘 주인공이 

결국에 한다는 건 구글 대체하는 IT재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참 안타깝네요.

물론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죠.

완전히 생소한 분야(예를 들어 제약, 신소재 같은)를 쓰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테니 

작가님이 제일 잘 알고 쓰기 편한 분야에 집중한다는 선택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안일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네요.

특히 최근 에피소드에서 나온 '벌어질 일은 결국 벌어진다'는 설정이 결정타였습니다.

어차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반드시 벌어지니 

자기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 한 차기 대통령은 

노무현 후보가 될 게 99.9999% 확실하다네요.

주인공은 전 세계 범위로 어마어마한 변화를 야기해왔고 

특히 한국에서는 그 변화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사실상 원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답니다. ㅎㅎ;;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냥 기존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써먹고 싶으니까 

나비효과니 인과관계니 그딴 거 깔끔하게 무시하고 

편하게 편하게 쓰겠다고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이건...

전부터 그런 기미가 보이긴 했는데 대놓고 이런 소리를 하니 실망을 금할 수가 없네요.

한 100~200편 전부터 관성으로 읽고 있기는 했는데 

이젠 그 관성도 힘을 잃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ㅜㅜ

물론 아직도 재밌게 보시는 분들 많을 거라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길고 길었던 투덜거림 이만 마치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