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의 책

  이 책은 미국 예일대의 역사학과 교수이며 중국사에 정통한 학자인 조너선 스펜스가 짓고 이준갑이 번역했으며 이산에서 출판한 역사서( 歷史書)다.

 강건성세를 연 강희제의 뒤를 이어 청나라를 12년간 통치한 옹정제(雍正帝)가 중국을 다스리던 옹정 6년(1728년)에 쓰촨성(四川省: 사천성)과 산시성(陝西省: 섬서성)을 다스리는 촨산(川陝) 총독 웨중치( 岳鍾琪: 악종기)에게 심부름꾼인 장시(張熙: 장희)가 접근하여 반란을 종용하는 편지를 건넨다. 웨중치는 육백여 년 전인 송대에 여진족과 싸우던 용맹한 장수인 웨페이(岳飛: 악비)의 후손이며 무인으로서 여러 차례의 전공을 세워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웨중치는 장시가 후난성(湖南省: 호남성)의 융싱현에 살고 있는 쩡징( 曾靜: 증정)의 제자로서 스승인 쩡징이 시켜서 편지 심부름을 했으며 쩡징은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까지 활약했었던 한족 학자인 뤼류량( 呂留良: 여유량)의 반청 사상을 담은 책들에 감화되어 반란을 생각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웨페이의 후손으로 널리 알려진 웨중치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웨중치는 이미 고위 관료가 되어 청나라에 충성하고 있었으므로 반역의 뜻이 전혀 없어서 지방관들이 황제에게 보내는 문서인 주접(奏摺)을 작성해서 황제에게 이 반역 미수 사건을 고해 바친다.

 웨중치는 쩡징과 장시,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반란을 모의한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서 심문하여 알아낸 것들을 옹정제에게 주접으로 계속 보고하는데 이를 통해서 한족들의 만주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식이 매우 깊고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옹정제는 쩡징과 서신을 통해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유언비어와 뤼류량의 반청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는 쩡징을 각성시키게 되는데 이때 황제와 역 모를 꾸민 한 평민 사이의 무수한 서신 왕래를 책으로 펴 내서 중국 전지역의 한족들을 교화시키는 목적으로 발간한 책이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이다. 이 과정에서 쩡징이 진심으로 황제의 의견에 감복했는지 권력의 위협에 마지못해 설복되는 척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한족들은 대의각미록을 들으면서 황제의 심사숙고한 반박과 해명은 잊어버리고 반청사상과 쩡징이 들은 유언비어만 기억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반청사상의 주된 근거는 화이론(華夷論)인데 화이론이란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의 준말로서 중화를 존중하고 오랑캐인 이적(夷 狄: 동이와 북적)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중국인이 아닌 주변의 오랑캐들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짐승으로 본다는 민족차별주의였었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도 전장에서 나라가 달라도 같은 중국인들끼리 싸워서 승패가 판가름나면 그들은 꼭 죽여야 할 명분이 있는 사람만 제외하고는 모두 살려 놓아서 승전국의 백성으로 살게 했었지만 언어가 다른 주변의 소수 민족들과 싸워서 승리하면 그냥 복속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끔찍한 학살을 하거나 뿔뿔이 강제 이주를 시켜서 유민이 되게 하여 다시는 나라를 만들어서 중국에 대항하지 못하게 하는 강경책을 썼었다는 역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웨중치는 이 사건의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몽골 준가르족과의 전쟁에서 연거푸 패전을 해서 그 책임을 지고 관직을 빼앗기고 전재산도 몰수됐으며 비참하게 연명하며 살다가 건륭제가 즉위하자 복권된다.

 옹정제는,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죽고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책으로 반란을 선동한 뤼류량을 부관참시하고 그의 유족들도 참수하거나 노비로 삼았으며 그 외의 동조자들도 참수형과 기타 형벌을 주었지만 쩡징과 장시만은 수많은 신하들이 그들을 능지처참형에 처하라고 상주하는데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듣지 않고 생활비를 주며 다른 백성들이 위해를 가하지 않게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살려 놓는다.

  이 책의 원제인 "Treason by the Book"은 직역하면 "책에 의한 반역"이라는 뜻인데 자신은 쩡징에게 반청사상과 역모에의 의지를 불러일으킨, 반청사상을 담아 놓은 뤼류량의 책들을 반역의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인터넷의 어떤 서평에는  돈 키호테 같은 과대망상의 터무니없는 역모를 꾸민 쩡징과 황제의 대화가 수록돼 있는 대의각미록이 반역의 책이라고 정의해 놓았으니 이는 읽는 이의 판단에 맡길 일이리라.

 나중에 옹정제의 넷째 아들로서 황위를 계승한 건륭제(乾隆帝)는 쩡징과 장시를 능지처참형에 처했으며 그들의 가족들도 처형하고 만 열여섯 살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종신토록 노비로 삼거나 북쪽 변방으로 유배시켜 군인으로 살게 했으며 가산도 몰수했다.

 그리고 황실의 치부와 선제를 비방하는 내용이 무수히 수록돼 있는 대의각미록을 금서(禁書)로 만들어서 남김없이 없애버리고 그 책에 대한 강의도 중지시킨다. 그러나 이 일도 백성들은 책의 내용이 대부분 진실이어서 황제가 책을 없애버렸다고 생각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한다.

 건륭제는 만 61년간 청나라를 다스린 강희제의 기록을 깨지 않기 위해서 1735년 10월 8일에 즉위해서 1796년 2월 9일에 열다섯째 아들인 가경제에게 양위했지만 1799년에 죽을 때까지 실권을 행사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재위 기간(만 63년)을 기록한 황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읽기에 딱딱하고 까다로운 내용을 담아 놓은 무거운 주제의 책이었지만 읽고 난 후의 감동과 여운은 오래 남는 책이었다.

 수많은 사료와 책들을 고증한 저자의 중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연구의 노력이 알차게 결실을 맺고 있는 이 책은 아시아의 대국인 중국에 대한 저자의 무한한 찬탄과 경의가 드러나 있는 것이었다.

 강건성세의 중간대에서 비록 12년의 결코 길지 않고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청나라의 통치 기반을 더욱 굳게 다져 놓은 옹정제의, 통치에 대한 열정과 화이론에 입각한 반청사상을 조리 있게 반박하고 설득해서 불식시키려는 끈질기고 솔직하며 고지식하기까지 한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또한 화이론을 받아들여서 스스로 소중화( 小 中 華)로 자처하며 현상유지에 급급했었던 조선과는 크나큰 차이를 보이는 만주족의 진취적인 성공을 선망하게 하는 책이었다.

 좁게 보면 황제의 황 권 유지를 위해서, 조금 넓게 보면 황실과 동족인 만주족의 명예로운 존립을 위해서, 더 넓게 보면 한족들과 기타 소수민족들을 포함한 중국 전체의 안녕을 위해서 불철주야로 번민하고 노력한 성군의 열정과 집념이 실감나게 흉중에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 책은 세심하고 영명 하게 드넓은 중국 영토와 수많은 중국인들을 통치한, 강건성세의 만주족 황제들의 통치술과 통치를 위한 다양한 분야의 해박한 지식이 권위주의와 향락에 사로잡혀서 정사에 소홀했었던 한족 황제들보다 훨씬 더 나았다는 것 을 입증해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토록 위세당당했었던 청나라도 20세기 초에 내부의 부패가 극심해지고  서구 열강들과 일본의 국력에 밀려서 결국에는 망하고 말지만 강건성세의 전성기에는 전세계의 중심이고 가장 발전된 민족이라고 자부하는 중화사상에 걸맞은 강대국이었었던 것이다.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하고 주변 상황이 유리해야 하며 그 주변 상황을 잘 이용해야 함과 아울러 국민들의 정신이 깨이고 슬기롭고 용감하고 뭉쳐야 할 때에는 일치단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이 책에서 "옹정제와 사상통제"라는 부제는 번역자가 임의로 붙여 놓은 것이라고 한다.

 과대망상으로 가득 찬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역모 사건이 크게 번져서 장황한 결과를 낳고 오늘날에 미국인이 쓴 한 권의  장황한 책이 돼서   중국사의 그 한 부분의 베일이 벗겨지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광대한 중국의 역사는 까도 까도 또 까게 되는 양파처럼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고 신비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