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탐사선 달 보내려면…정치이슈화·들쭉날쭉 예산부터 손봐야

日우주개발에 R&D 7.9%
韓 2.9%로 20년째 똑같아
"우주 예산 언제 깎일지
몰라 기업 미래 불투명"

민간주도 뉴스페이스시대
세계 첫 달환경체임버 개발
차별성으로 경쟁력 키워야

◆ 달 착륙50년…韓 달탐사 현주소 / ③ 韓 우주 선진국 되려면 ◆

최근 기자가 찾은 경기도 고양시 소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창 건설 중인 극한환경실험동 앞 임시보관소에 들어서자 폭과 높이가 각각 4.7m인 대형 체임버가 포장에 싸인 채 놓여 있었다. '지반열 진공체임버'로 불리는 이 장치는 인공으로 달 표면의 극한 환경을 모사해 놓은 것으로 달 탐사에 쓰일 각종 우주 장비를 시험하기 위해 만들었다. 달 표면에는 태양풍으로 날아오는 전하 입자 때문에 흙먼지에 정전기가 계속 쌓인다. 이 때문에 달 표면에 내려보낸 로버(탐사차)에 정전기로 흙먼지가 달라붙게 돼 작동 효율이 떨어지거나 고장이 날 수도 있다. 이 같은 비상 상황을 미리 체험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실험을 하기 위해 만든 진공체임버는 오는 9월 완공 예정인 극한환경실험동에 설치돼 내년부터 국내외 연구진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신휴성 건설연 미래융합연구본부장은 "이전에도 우주 환경을 모사하는 열진공체임버는 있었지만 흙먼지에 정전기가 충전돼 있는 달 표면 지반 환경까지 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유일하다"며 "이 때문에 열진공체임버에 관심을 보이는 해외 연구진이 늘고 있어 국제 협력을 통해 응용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69년 7월 20일 저녁 10시 56분(한국시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인류의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이제 국가 외에 민간기업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린 가운데 열진공체임버 개발처럼 한국만의 차별화된 우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주 개발 후진국인 한국이 단순히 선진국의 우주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을 넘어서야만 우주 개발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안재명  KAIST  교수는 "과거 우주 탐사 때는 달에 가는 것 자체가 도전적인 임무였던 반면 이제는 달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등 경제성과 같은 철저한 목표 의식이 필요해졌다"며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혁신적인 임무를 찾기 위해서는 연구자에서 정부로 이어지는 보텀업 방식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도 "우주 개발 임무와 국제 협력은 철저히 기술적인 검토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공무원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보다는 기술자 실무진 단위에서 먼저 결정을 한 뒤 정부가 이에 대해 승인을 하는 형태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우주 전담 행정조직이 필요하다는 학계와 산업계 요구도 높다. 더 먼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국가 간 경쟁보다는 협력이 우선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협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독립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아랍에미리트( UAE )는 2014년 우주청을 설립한 뒤 우주 개발이 탄력을 받으면서 내년 1월 화성 탐사선 '호프' 발사를 앞두고 있다. 프랑스는 우주국에 이어 지난 13일(현지시간) '우주군사령부'까지 창설했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산하에 우주정책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태식 한양대 특훈교수는 "한국에 우주청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기존처럼 우주 개발이 과도하게 정치 이슈화되거나 다른 R&D 사업처럼 획일화된 행정절차를 거쳐 추진된다면 지금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주 개발)예산만이라도 예외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달 표면 환경을 모사해 만든 `지반열진공체임버`. [고양 = 송경은 기자]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해 우주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국내 위성기업인 쎄트렉아이의 김병진 연구소장은 "우주 기업의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환경을 구축하고 기업이 재투자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정부의 우주 개발 사업에 참여해 얻은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 IP )을 참여 기업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기업에는 시장에 진출하는 타이밍인 '타임 투 마켓'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부가 한 달 결정을 미루면 기업은 한 달 내내 손가락을 빨아야 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의 우주 개발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는 정권에 따라 들쭉날쭉한 우주 개발 예산과 일관성 없는 정책이 꼽혔다. 과기정통부와 한국항공우주학회에 따르면 우주개발 예산은 1998년 이후 증가하다가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2013년 나로호 3차 발사에 성공한 뒤에는 예산이 다시 확대돼 2016년 7000억원을 넘어섰지만 이후 3년 연속 감소해 올해는 5812억5000만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김병진 소장은 "아직까지 국내 우주개발 기업은 정부 사업에 참여하는 형태로 기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인데 정부의 우주 개발 사업 자체가 언제 쪼그라들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신 교수도 "일본의 우주 개발 예산은 전체 R&D 예산의 7.9%(3조3000억원)인 반면 한국은 2.9%에 그쳐 199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며 "안정적인 예산 확보는 물론 규모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