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본래 인터넷이나 익명이 보장되는 곳이라도 정치적인 혹은 이념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꺼리는 성향입니다.
저는 일반적인 내용의 글조차도 거의 올리지 않습니다. 이 글도 유사한 내용을 쓸까말까 매우 망설였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이번에 작성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올리는 것을 매우 망설였으나, 이 글은 어떤 정치적인 혹은 이념적인 문제와는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여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최근 성추행 관련 글을 보니 어떤 분이 가해자로 몰린 사람의 글만으로는 자기변명일 수 있으니 상황을 잘 알 수 없고, 법원에서 판사의 판결이 나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쓴 글의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더군요. 사실 위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 맞고 실제로도 그래야 합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법원의 판결을 신뢰할 수 없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성범죄 관련해서 가해자로 몰린 입장에서는 법원의 판결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 법원의 판결은 일단 성범죄의 가해자로 몰리면 억울해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잘 아는 변호사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사건이 있습니다. 특정이 될 수 있으니 두루뭉실하게 사건 개요만 말씀드리겠습니다. MT를 갔는데, 어떤 여자A가 잠결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면서, B라는 남자가 성추행한 것 같다고 고소를 했습니다. 심지어 그 A는 B가 성추행한 것을 보았다고 지목한 것도 아니고, 성추행범이 B였던 것 같다는 진술만 한 것입니다. MT였으므로 A가 자고 있는 방에 B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들도 여러차례 드나들었습니다.
목격자는 없고, 증거는 단지 A의 진술뿐(굳이 또하나 증거를 대자면 A가 그날 아침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보낸 카톡이 있습니다). B는 억울하다면서 무죄를 다투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1심은 A의 진술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어 B의 범행이 명백함에도, B가 반성하지 아니하고 피해자와 합의도 하지 않으므로 개전의 여지가 없다고 한 후 징역 10월을 때리고 법정구속해버렸습니다.
그 변호사님이 정말 말도 안되는 판결이라면서 속상해하시더군요. 저도 듣고 매우 어이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A는 B가 성추행범이다고 말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범인이 B라고 생각된다고 말한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 변호사님이 피고인 관련해서 불리한 증거가 있었음을 저한테 숨기고 이야기 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평소 제가 그 인품을 잘 아는데, 제게 그런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는 분입니다. 그저 이런 판결이 있는데 참 황당하다면서 제게 하소연을 하시면서 굳이 피고인을 감쌀 이유도 없죠.
국가의 형사재판은 가장 큰 원칙이 "(유죄인지)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죄추정의 원칙입니다.
옛날에는 원님재판이라고 해서 일단 범인으로 의심스러우면 무조건
"네 이놈 네죄를 네가 알렷다?"로 시작해서 범인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면
"어허 저놈이 아직도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에잇! 저놈을 매우 쳐라"고 해버립니다. 불때까지 고문을 하다가 끝까지 자백안하고 죽으면 독한놈인 것이고, 고통을 못이겨 불면 "그래. 역시 네놈이 범인이었군. 저놈을 죽여라"로 끝났다고 합니다.
즉 국가가 범인으로 점찍으면, 범인으로 몰린 자는 자신의 무죄를 자신이 입증하지 않으면 유죄인 것이었습니다.
이게 불합리하다고 해서 근대로 들어와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확립되고, 국가가 범인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형사처벌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성범죄 관련해서 버젓이 원님재판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논리 구조는 원님재판과 똑같습니다.
"피해자가 너를 범인이라고 지목했고 진술이 일관되니까 넌 범인이다.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합의하면 봐주마(형량을 깎아주마)."
피고인이 난 무죄라고 주장하자.
"헐? 이 새끼가 범죄자 주제에 반성을 안해? 넌 그냥 실형 살아라. 징역 10월. 땅땅땅."
2심에서 집행유예라도 나올려면 억울해도 무조건 범죄 인정하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자)에게 돈 좀 쥐어주면서 합의를 구걸해야 합니다.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며 싸우다가는 계속 구속되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실 위 B가 실제로 범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정상적인 사법기관이라면 아무리 심증이 가도 유죄를 확신할만한 증거가 없다면 위 사건의 경우 B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 무죄추정원칙으로 인해 실제 범죄자가 무죄로 빠져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범죄자를 처벌하고자 한다면 수사기관(검찰)이 좀 더 치밀하게 수사를 하여 증거를 제출하여야 할 일이지, 피고인에게 무죄를 입증하도록 책임을 전가해서는 아니됩니다.
성범죄 관련해서 이런 일이 한두건이 아닙니다. 인터넷에 가끔 떠도는 기사 말고도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남자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성범죄자가 될 위험성에 매우 크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남성전용칸을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할지. 사실상 여자가 성추행 당했다고 하면 방법이 없는 형편입니다.
도대체 피해자 진술 하나만으로 범죄자가 되어 버리는 것은 어디의 어느 나라 법도인지 모르겠습니다.
(성범죄는 보통 둘만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므로 예전에는 실제 성범죄자가 이런 무죄추정원칙으로 인해 무죄판결 난 경우도 많았기에 최근에는 이에 대한 반동으로 성범죄 관련해서는 피해자진술만으로 유죄가 추정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만, 이렇게 되면 반대로 억울하게 성범죄자 누명을 쓰게 될 사람들이 매우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범죄 관련해서 판사가 사실관계를 피해자 진술 위주로 판단해버리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는 형편입니다. 이게 변호사가 변호를 잘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남자분들 남의일이 아닙니다. 성범죄자로 몰렸을 경우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다면 최근에는 거의 유죄가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엄한남자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는 거 요즘에 매우 쉽습니다. 원한 있는 남자 주변의 여자 혹은 연기력 좋은 여자 하나 매수해서 성범죄자로 몰아버리면 정말 쉽게 매장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모르는 여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미봉책으로 삼고 여자와 단 둘이 있는 일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시사)
극혐주의) 악마를 보았다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