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장군을 아십니까?

나에게는 도원동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다.

그분들의 밑에는 삼촌 한 분과 고모 한 분이 있었는데

삼촌은 미국에서 돌아가셨고 숙모는 현재 아들과 미국에서 살고 계시고 고모는 브라질에서 딸과 두 아들과 함께 살고 계시지만 현재 치매를 앓고 계셔서 아파트에서 남편과 계신다고 알고 있다. 

도원동 할아버지, 할머니로 불리우는 이유는 이북에서 이남으로 내려와 어떤 경로로 적산 가옥을 한 채 얻으셔서 그곳에서 뻥튀기를 만들어 도매를 하셨는데 그 동네가 원효로 옆의 도원동이었기에 그 동네 이름을 붙여 그리 부르게 된 것이었다.

엄마와 내가 새벽에 목포를 출발하여 서울에 내려서 외할머니 댁에서 사는 모진 서울 생활을 할 때 우리 엄마가 학교앞의 행상을 할 수 있도록 그 뻥튀기를 대어 주시는 고마운 일을 하신 분들인데 두분이 다 돋보기를 까만 안경테에 맞추어 쓰고 계셨던 아주 인자함이 얼굴과 말씨에서 묻어나는 분들로 기억하고 있다.

그 가족들이 다 브라질로 이민을 가서 그분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 지를 알지 못하다가 브라질 주재원이 되어 그 가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사촌 동생인 시봉 삼촌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분은 반공 포로 출신으로 브리질로 간 28명중의 한 분으로 인도에서 브라질로 가는 배 안에서 어떻게 브라질 국가를 구해 같이 가는 27분의 동료들에게 가르쳐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에 도착하였을 때 환영나온 브라질 인사들 앞에서 도열하여 브라질 국가를 부르게 한 장본인이며 그로 인해서 많은 혜택을 보며 브라질 생활을 성공적으로 한 분이다.

이분을 우리 가족이 만난 자리에서 우리 가족과 이북의 명장 김 무정 장군과의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신의주에서 대동여관이라는 숙박업소를 경영하였고 시봉 삼촌은 우리 아버지와 함께 그 여관에 자주 놀러가 동생벌 되는 삼촌과 어울리는 소위 삼인방이라고 하였다. 우리 아버지가 가장 큰 어른이시고 시봉 삼촌은 둘째 그리고 삼촌은 막내였다고 한다.

당시 여관 옆에는 김 무정 장군이 사단장으로 있던 무정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기에 대동여관에서 기식하던 삼인방과 여관의 식구들은 무정 장군 부대의 기상 나팔 그리고 취침 나팔을 다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근데 할아버지는 시봉 삼촌에게 자꾸 나팔을 부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할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으시더니 시봉 삼촌에게 앞장을 서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디 가시게요?"

"음,  무정 장군을 만나 보아야 겠어. 앞장 스라우."

"와요? 무정 장군이 만나주시갔어요?"

"말이나 해 봐야디. 앞장스라."

시봉 삼촌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옆에 있는 무정 장군의 부대로 갔다. 정문을 지키는 위병이 그들을 제지했고 할어버지는 그들에게 무정 장군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댔다. 위병들은 그 이야기를 무정 장군의 부관에게 전달했고 무정 장군은 곧 그들을 들어오게 하였다. 부관이 정문까지 나와서 시봉 삼촌과 할아버지를 모셔 장군의 집무실까지 안내했다.

"안녕하쇄까? 나 무정입네다."

무정 장군은 환하게 웃으며 이들 조손을 만나 주었다. 시봉 삼촌은 아무 말없이 곁에 서있었고 할아버지가 말씀을 하셨다.

"일케 시간을 내주시니 감사하왜다. 난 이 부대 옆에서 대동 여관을 하고 있디요. 아침마다 기상 나팔 소리를 듣고 저녁에는 취침 나팔 소리를 듣는데 아무래도 곡조와 소리내는 방법이 다른 것 같아서 한번 알아보려고 들렸습네다."

"아, 그래요? 나팔을 좀 부셨나 보디요?"

"예, 내래 젊을 때 만주에서 나팔을 부는 사람들 따라다니면서 배운다고 했는데 신통치 않습네다."

"잠깐 기다리시라요. 부관은 나팔수들을 불러 오라우."

나팔수들이 올 때까지 무정 장군과 할아버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시봉 삼촌은 이런 세부 사항을 남기지 않으셨다. 이윽고 나팔수들이 왔고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올바른 곡조와 부는 방법을 가르쳤다. 나팔수들은 이 곡을 악보없이 배운 것이라 할아버지의 교수를 흔쾌히 받아 드렸다. 

무정 장군은 이런 교습을 만면에 웃음을 띄며 지켜보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나팔수들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내자 교습이 끝난 것을 알리고 무정  장군의 집무실을 나오셨다.

그날 부터 부대의 나팔 소리는 달라졌고 할아버지는 웃음으로 그 소리를 즐기셨다.

이 이야기를 하시는 시봉 삼촌이 얼마나 표정을 다양하게 구사하시고 목소리도 다채롭게 사용하시던지 같이 듣던 우리 가족, 내 아내, 아들 그리고 딸이 정말로 많이 웃었고 또 감동을 받았는지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벌써 20년이 흘렀고 시봉 삼촌과 숙모는 이 땅에 계시지 않고 아이들은 커서 37살과 34살이 되었다. 내가 만약 이 이야기를 써 두지 않는다면 도원동 할아버지가 무정 장군의 나팔수를 교육한 사건은 아무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고 우리 식구들도 잊게 되고 말 것이다.

그 후 시봉 삼촌은 김 일성 치하에서 황해도 해주 음악대학을 다니셨는데 그 학교는 김 일성 대학의 음악대학이 되었다. 졸업 후에는 쏘련의 차이콥스키 음대로 유학을 가셨는데 거기서 육이오를 맞고 징집되어 군 장교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나팔수의 인연이었는지 무정 장군 부대에서 근무를 하게 되셨다 한다.

인민군 대위가 되어 임진강 건너편에서 근무를 하는데 신을 인정하지 않는 그 군대가 싫어 남한으로 귀순할 마음을 먹고 자신의 중대원들중 같이 귀순할 사람을 확보하였는데 그 수가 68명이었고 대부분이 목사, 장노 그리고 전도사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물론 시봉 삼촌의 아버지 즉 나의 아버지의 큰 아버지는 목사이셨다. 그들을 이끌고 임진강을 넘어 귀순했는데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 부대 통역을 하셨다 한다. 

거제도에 포로 수용소가 생기면서 귀순한 삼촌과 그 부대원이 아마 전부 포로수용소에 가게 되었는데 그 사정은 정확히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런 조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삼촌은 제3국행을 원하는 그룹에 속하게 되고 인도를 거쳐 브라질에 안착하게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