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주의) 코로나 사태에서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본인의 후기

1. 오후부터 같은 사무실의 동료가 안 보여서 알아보니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에 갔다고 함. 어제 커피 한 잔 같이 마시며 주말 간 감기 기운이 있어서 혹시나 해 체온계로 수시로 열을 재 봤다고 얘기한 게 기억났음. 왜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물어보니 배우자가 확진이어서 검사대상이라고 함

2. 사실 나는 지난주부터 콧물, 가래가 약 5일 정도 있었고 이비인후과에서 진찰받고 단순 코감기로 진단받아 약을 먹고 있었음. 근데 오늘은 어제 먹은 맥주 때문인 것 같지는 않은데 두통이 심했고 재보진 않았지만 열이 있는 것 같았음. 

3. 퇴근 후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온몸에 미리 준비해둔 스프레이형 소독제로 분무를 하고 브라운 체온계로 열을 체크해 봤음. 37.5도 나옴. 여러 정황상 나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 일단 집사람에게 어디든 다녀온다고 얘기하고 무작정 차에 탐. 집엔 24개월 아기와 태어난 지 30일 되는 신생아도 있어 확실한 검사가 받고 싶었는데 생각나는 게 OO구 보건소밖에 없어서 일단 자가용을 몰고 거기로 감.

4. 오후 7시쯤 OO구 보건소 앞에 도착했을 땐 모두 퇴근한 듯 깜깜했음. 콘테이너 박스에 선별진료소라는 프랜카드와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안내문은 즐비했는데 막상 내 증상에 대해 문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했음.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는데 아무도 없는 듯 깜깜한 보건소의 첫인상에서 깊은 괴리감을 느꼈음

5. 출입문 쪽에안내된 1339를 비롯, 보건소 등 안내된 세 곳에 모두 전화를 해 봤는데 1339를 제외하곤 모두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음. 1339는 원론적인 답변 정도였으며 지역 보건소 방문을 권장하였음. 보건소엔 출입문 보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바로 옆 시청에 들어가 입구에 있던 경비 선생님께 이러이러해서 방문했다고 하니 보건소에 가라고 안내를 하셨음. 보건소는 닫혀서 들어갈 수 없고 불이 모두 꺼져있다고 하니 직접 보건소 안쪽의 당직실로 안내해주셨음.

6. 보건소 당직실엔 여성 직원 세분이 계셨는데 나의 증상에 대해 문의하니 보건소에서는 지금 이시간에 뭘 해드릴 순 없고 또 주간에 와도 검사를 다 해주진 못한다는 안내를 받았음. 다른 선별 진료소를 물어보니 네 군데 선별진료소의 전화번호를 적어서 줌

7. 보건소에서 나와 차 안에서 선별진료소로 전화함. OO병원과 OOOO병원은 지금 와도 검사가 어렵다는 안내를 하며 내일 오전에 오라고 했고 OOO병원는 오라고 했으나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음. OO의료원은 알아보고 전화준다고 했는데 결국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음.

8. 전체적으로 사람이 많이 몰리는지 나중에 오길 원하는 것 같고, 또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일단 하룻밤 자보고 내일 아침에 증상을 보기로 하고 귀가 함

9. 다음날 일어나보니 감기 기운도 많이 좋아지고 가래도 현저히 줄었으며 심했던 두통도 말끔히 사라졌고 열도 없었음. 일단 평상시처럼 회사로 출근함.

10. 출근해보니 어제 그 동료는 오늘도 출근하지 않음. 검사받겠거니 생각하며 평소 업무를 하다가 오후에 외근을 나갈 일이 있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 동료로부터 양성판정을 받았다는 전화가 옴.

11. 위로해주며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전화를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외근지로 운전하던 중 <내가 지금 외근지에서 사람을 여럿 만나면 일이 잘못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함.

12. 차를 외진 곳에 대 놓고 차 안에서 생각을 정리함. 집사람 생각도 나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생각하며 노트에 지난 1주일 동안의 동선을 적어 놓음. 생각이 정리됐을 때쯤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함. 갓 태어난 둘째와 첫째가 걱정됨....

13. 어디 들리지 말고 빨리 회사로 복귀하라는 팀장님의 전화가 왔음. 소식을 먼저 알았던 나는 안 그래도 달리 갈 곳이 없어 회사로 복귀중이었음.

14. 회사에 복귀하니 사장님과 몇몇 임원 및 주요 부서 팀장님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듯했음. 회의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끝났고 곧 직원에게 공지했음. 회사를 일정 기간 폐쇄하기로 하고 모든 직원은 귀가하며 증상이 의심되는 직원은 선별 진료를 받으라는 내용이었음. 덧붙이자면 폐쇄, 자가격리 등으로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기간은 유급 처리되며 연차 삭감도 없음.

15. 대부분의 직원이 귀가하고 밀접접촉자였던 우리 사무실 사람 약 10명은 보건소의 역학조사팀을 기다리게 됨.

16. 세 시간 뒤인 오후 6시에 약 10명의 역학조사팀이 회사에 도착하였고 팀은 역할별로 분담하여 개인별 기초역학조사서 작성, 검체 체취, CCTV를 통한 확진자의 동선 파악을 했고 특히 CCTV 같은 경우 내부사정을 모르는 역학조사팀은 확인하기 어려워 우리 직원들이 돌아가며 일일이 확인을 도와줌.

17. 기초역학조사서는 문진을 통해 작성되었으며 5분이 채 걸리지 않음. 검체 채취도 코에 긴 면봉을 넣는 것과 가래를 한번 뱉어내는 것으로 검사는 끝났음. 

18. CCTV를 통한 확진자의 접촉자 확인 작업은 개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역학조사팀과 우리 직원은 결국 자정까지 지난주 몇일분까지 접촉자를 확인하여 접촉자의 모든 신원을 파악했음. 신원이 확인되는 즉시 연락하여 검사 환경이 꾸려진 회사로 올 것을 요청하거나 불가능한 사람은 가까운 선별진료소에 최대한 빨리 가서 검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됨

19. 모든 인원이 나가고 흰색 옷을 입은 방역팀에 의해 회사는 모두 소독처리 됨. 회사는 특정일까지 폐쇄되고 아무도 회사에 들어갈 수 없음. 선별검사를 받은 인원은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더라도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음. 검사 결과는 이르면 내일 오후 늦게, 늦으면 모레 오전에 나올 거라고 답변받음

20. 다들 집에 가족이 걱정되는지 어디로 귀가해야 할지 모르고 헤매는 모습을 보였으나 현실적으로 갈 곳이 딱히 없었음. 모텔 같은 숙박업소에 가도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숙박업소는 큰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 편히 있을 곳이 내 차 안 밖에 없었음. 집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차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워 집에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리기로 함

21. 새벽 세 시쯤 추운 것보다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음. 머릿속에 공중화장실의 위치들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무턱대고 아무 화장실이나 가면 나 때문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갈 수 없었음. 결국 현실적으로 집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생각되어 집사람에게 화장실이 딸린 방에 식구들이 필요한 물품은 다 빼고 한동안 마실 수 있는 생수와 소독용 겔, 소독용 스프레이, 양말, 옷, 핸드폰 충전기, 휴대용 가스버너, 가스통, 주전자, 비닐봉지, 체온계 등을 준비해 달라고 한 뒤 마지막으로 집 앞 편의점에 들렀음. 편의점에 가는 것도 참 많이 망설였는데 온몸을 꽁꽁 싸고 손은 소매로 감추고 가서 컵라면 대여섯 개를 계산했음.

22. 현관에서 온몸을 소독하고 준비된 방으로 들어간 뒤 자가격리에 들어갔음. 첫날은 너무 피곤했는지 꿀잠을 잤고 둘째 날엔 세끼 모두 컵라면을 먹었음. 체온계로 온도를 재보고 컴퓨터로 회사 업무도 보며 방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음. 

23. 오후 늦게 보건소로부터 음성판정을 받았고 회사 인원 전원 음성판정을 받았다는 문자를 받았음. 큰 안도감을 느끼며 문밖으로 바로 나가고 싶었지만, 혹시 몰라 하루 더 방에서 자가격리하기로 함.

24. 자가격리하며 집사람 혼자 애들을 돌보는 소리를 듣는데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음. 그리고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음.

25. 현재도 자가격리 중..   

26. 자가격리중 보건소 직원이 방문하여 자가격리 수칙이 적힌 안내문 외, 마스크, 소독제, 체온계등의 지원물품을 전달해주고 감. 이 부분은 지자체별로 지원 내용이 달라지는것으로 확인

다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