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새로 오신 법인장에 대해 글을 썼었지요.
이쪽 업종이나 제조업은 고사하고 일반 회사에 대해서 뭐 하나도 모르는 은행 지점장 출신.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생산을 잡을 수 있는 생산 출신의 법인장이나,
그것이 안된다면 차선책으로 모회사와의 분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관리의 달인인 법인장이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저 몸보신이나 하면서 실무진의 의견을 수렴하는 법인장이었는데..
결론은 직급 높은 인턴 사원이 한 명 뚝 떨어 졌네요.
사실 요즘 똑똑한 인턴들이 오히려 다 나을 정도 입니다.
은행에서만 일을 해서 다른 거 잘 모르고,
나이가 많아서 엑셀 같은 프로그램을 잘 사용할 줄 몰라도,
저나 다른 관리부 관리자가 나름 경험이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충분히 보좌가 가능한데..
계속 일을 만들고 있네요.
제가 가장 깼던 것 중에 하나가 결재를 하지 않으려는 것 이었습니다.
전부 이거 회장님이 아시는 건가? 사장님이 아시는 건가?
그 외에는 무조건 보류 입니다.
책임을 지라고 있는 자리가 법인장인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면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 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렇게 일을 하려면 도대체 법인장이 있는 이유가 뭘까요?
그냥 기존에 하던 대로 하면 될 것을..
아니나 다를까 기존에 하던 대로 자금결제의 결재라인은 모회사의 자금 담당 임원에게로...
물론 6개월 짜리 계약직이라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은 알겠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도 6개월이란 시간 동안 신설 공장에서 뭔가 성과를 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꾸 이것저것 건드리려고 하네요.
저나 다른 관리자가 진심으로 여러 번 조언도 드리고 했지만 바뀌는 것이 없습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일단은 올라오는 결재 자료들 찬찬히 보고 자금 흐름 보고 사람들 대화 들으면서
분위기나 흘러가는 모습 따라 잡은 뒤에 하나 씩 해도 늦지 않다고 했지만 ㅠ.ㅠ
덕분에 3주 정도가 지난 지금은 아예 주도권을 잃어 버렸습니다.
공장 쪽 관리자들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니 벌써 답이 나온 것 이지요.
그래서 요즘에는 회의 시간에 생산 총괄하시는 상무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네요.
법인장 말도 끊으면서.
이런 것을 우려해서 그렇게 조언을 했건만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아는 것은 없는데 뭔가는 해야 되겠으니 쓸데 없는 일을 자꾸 만듭니다.
예를 들면, 창문이나 문에 붙어 있는 문조심 표지나 안내문, 부서 명패 같은 것에 신경을 씁니다.
테두리를 둥글게 만들고 글씨는 녹색으로....위치가 삐뚫어진 거 같고...블라블라..
거기에 창문 블라인드 열고 닫는 것 까지 아주 디...테...일 하게 신경을 쓰네요.
블라인드는 반만 열어 두라고 하길래 짜증나서 한마디 했습니다.
' 그렇게 하면 그림자가 계속 져서 신경 쓰여서 일을 못 합니다. '
그랬더니 은근슬쩍 꼬리를 내리시더군요.
이건 이렇게 해야 아낄 수 있고 저런 저렇게 해야 아낄 수 있고...
주저리주저리 하면서 정작 본인은 에어컨 틀어 놓은 채로 창문, 문 다 열어 놓고 다니고,
본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항상 에어컨은 켜고 다니고,
퇴근해야 하는데 퇴근 시간 즈음에 어디 론가 사라져서 쓸데없이 사람들 기다리게 만들기나 하고
퇴근을 할 거면 말이라도 하고 가던가 ㅋ
아무 것도 모르면서 고집을 있어서 옆에서 뭐라고 한마디 하면 버럭버럭 합니다.
회장님께 업무 보고한다고 부서별 업무 내용 취합하더니 저를 부르더군요.
가봤더니 이게 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아는 데로 설명을 해줬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더니 뭔가를 적기 시작하는데 전혀 엉뚱한 내용을 적고 있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 저 죄송하지만 저렇게 적으시면 안됩니다. 저것은.."
그러니 딱 쏘아 보더니,
" 이건 내가 할 일이니까 내가 알아서 적어 "
" 아니..그렇게 쓰시면 전혀 다른 뜻이 됩니다.
그냥 제가 썼던 대로 그렇게 간단히만 적으시면 다 알아 듣습니다. "
그러니 그제서야 머쓱하게 바라 보더니 제가 쓴 것 처럼 수정을 하더군요.
다른 분에게 이야기 들어 보니 그 분도 같은 경험을 하셨더라구요.
얼마 전에는 출고 컨테이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컨테이너 상태가 안좋아서 물이 새는 상황이 발생한 것 이죠.
상황 파악을 하고 나름 수리를 내보내는 등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수리를 끝내고 돌아온 컨테이너의 상태를 보니 조금 미심쩍어 보이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죠.
정 안되면 박스 위에 방수포 같은 거 씌워서 출고할 수도 있는 문제 였습니다.
법인장이 나와서 보더니 제품이 젖으면 회사 이미지가 손상되고 그러면 바이어 오더가 끊기고 등등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데 너무 무심한 거 아니냐!
그 말을 듣고 솔직히 빈정 상해서 말을 했습니다.
" 제가 예전 부터 무역쪽 일을 했던 것은 아니고 여기 오면서 무역쪽 일을 병행하게 되었지만,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저희 나름의 메뉴얼에 따라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시기에는 태평한 거 같아도 저희도 조치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했고 포워더에 항의도 해 보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
" 아니 내 말 뜻은 그게 아니고.
포워더를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가? "
"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바이어 노미라서 포워더에서 배 째라고 나오면 저희도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
" 아니 그렇게 무신경하게 말하면 안되지. 포워더를 압박해서 바꾸던지 해야 할 거 아니야? "
" 법인장님. 바이어 노미라구요. 저희가 임의대로 바꿀 수가 없는 문제 입니다. "
" 어..그..그래. 노미 "
그리고는 마침 그 날 모회사에서 자금 및 무역 담당하는 임원이 저희 공장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분의 조치를 기다리자는 말을 하는 겁니다.
킁..
이대로 문제 생기면 안되니 그 분 컨펌을 받고 보내자는 것 이지요.
뭐..책임지기 싫어하니 일단 그건 수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 였습니다.
도무지 사무실로 돌아갈 생각을 않하는 것 이었습니다.
거기 있어봐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는데 멍하니 서 있기만 한 겁니다.
저도 별 수 없이 한참을 같이 서 있었습니다.
거의 한 시간 정도를 멍하니 있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한마디 했습니다.
" 어차피 지금 여기서 저희가 이러고 있는다고 뭔가 해결되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일단 사무실 돌아가서 업무 보시다가 그 분 오시면 다시 진행하시죠? "
" 허..그..그럴까? "
결국 아무 것도 한 것도 없이 사무실로 돌아왔다가 그 임원분 오시고,
방수포 씌워서 내보내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 동안 천국에서 살다가 갑자기 지옥으로 수직낙하한 기분입니다.
ㅠ.ㅠ
리더쉽 유형 중에 최악이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리더'라고 하죠?
딱 그렇습니다.
은행 지점장 출신이라고 해서 적어도 다른 것은 몰라도 자금이나 회계 쪽은 좀 알겠거니 했건만...
그것도 대화를 나눠 보니 전혀 아닌 것 같더군요.
회계의 기본인 발생주의와 현금주의의 개념 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현재 본사에서 보시기 편하라고 자금일보내역 정리해서 계정 별로 열람할 수 있고 투자 내역 등도
보기 쉽게 정리해서 만든 보고서가 있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만든 건데 그걸 가지고 공장 손익 계산을 하자고 하는 겁니다.
뭥미??
그래서 제가 그것로 하기 힘든 이유를 설명을 했죠.
아시다 시피 자금일보는 현금주의로 작성된 블라블라...
그러니 왜 안되냐는 소리만 하냐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 쉽게 설명을 드리면 저희가 지난 달에 휴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6월분 소모품 구입대를 7월이 아닌 8월 초에 결제를 했고, 곧 7월분도 이번 달에 결제를 할 예정입니다.
이걸 자금일보 베이스로 하면 7월에는 소모품 지출이 0원이고, 당월에는 2개월치가 한꺼번에 잡히게 됩니다.
당연히 손익이 왜곡이 되게 되는 거죠.
회계 기준대로 비용을 잡아야 그나마 제대로 비용 인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경리장이 없기 때문에 결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따라서 당분간은 회계 기준으로는 공장 손익을 뽑기 힘든 것 입니다. "
라고 설명을 하기는 했지만 왜 그게 그런지는 여전히 이해를 못하고 계신 듯 싶습니다...
은행 출신 임에도 불구하고 지출증빙도 제대로 볼 줄 모르시고.....자금일보 대사도 할 줄 모르시고.....
암튼 인간적으로는 법인장님이 처한 사정이 좀 딱해 보이기는 합니다.
평생 은행에서만 일하다가 명퇴 했더니 갈 곳이 없었는데 오랜 인연으로 알고 지내던 분이 법인장 추천해서
생전 가 본 적 없는 베트남이란 나라에 와서 일반 회사도 아니고 제조 업체를
그것도 신설 공장에서 6개월 동안 실적을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가장의 무게감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하지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 줄 수 없게 만들면 진짜 하기 싫어지는 거죠.
딱 까놓고 이야기해서 법인장 없이 본사 결재 받으면서 일하거나
아니면 아예 신입 한 명 법인장으로 뽑아서
보좌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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