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부 연대기.

공부를 정말 뛰어나게 잘하지도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스카이캐슬인지 뭔지가 화제인 것 같아서 한번 어린 시절 공부 이야기를 써 볼까 합니다.

한글은 부모님 말씀으로는 일찍 깨우쳤다고 합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갑자기 제가 간판을 읽더랍니다.

그 때가 제 나이 4살 정도 였습니다.

한글을 깨우친 상태에서 유치원에 갔습니다.

유치원에서는 평범.

국민학교에 입학해서도 평범했었습니다.

한글을 일찍 깨우쳤지마 받아쓰기를 하면 항상 100점을 못 받았었네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노는 시간 제외하고는 무조건 책만 읽었었습니다.

또래에 비해 제 책이 많은 편 이었는데 주로 전집 종류였습니다.

위인전 2-300여권, 어린이용 백과사전.

책이 한정되어 있으니 읽었던 책을 또 읽고 또 읽고 했었죠.

하루 평균 열댓권은 읽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시험 성적은 중상 정도.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또래들은 이미 학원에서 알파벳을 다 배우고 기초 영어는 배웠지만

전 대문자만 알고 소문자를 몰랐습니다.

그 때 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단..학원 다닌 목적은 친구들과 놀기 위해...

그 때도 책 좋아하는 것은 똑같아서 매일 책들을 읽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역사 분야.

성적은 반 50여명 중에 꾸준하게 20등 내외.

시험 기간에도 교과서는 안읽고 잼있는 책 있으면 그걸 우선해서 읽었으니 성적이 잘 나올리가....

예습, 복습은 다른 나라 이야기.

공부는 수업 시간에 하는 거고 나머지 시간은 놀거나 책을 보는 것이다라는 것이 저의 생각.

그리고 무조건 토요일 오후 부터 일요일까지는 놀아야 한다.

그 철칙은 시험기간이라고 예외가 없었죠.

당시 한달에 한번 어머니를 모시고 서점에 가서 내가 볼 책을 고르는 때가 가장 행복할 때.

연합고사를 보는데 대충 20여분 만에 다 풀고 나머지 시험 시간 내내 잤습니다.

선생님이 학교 포기한 줄 알고 잠든 제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가시더군요.

연합고사 성적은 200점 만점에 180점.

대충 반에서 20등 정도 성적.

그래도 전교에서 놀았던 것이 딱 하나 있었으니...그것은 아이큐검사 결과.

160이 나와서 그건 전교 순위권에 들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배정된 고등학교는 당시 교도소로 소문이 났던 곳.

학교 자체가 땡땡이가 불가능한 구조에 하루 종일 가둬 놓고 공부만 시킨다는 학교였습니다.

사실 전 고등학교 배정 받고서야 그런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정도 였습니다.

예비소집일에 학교에 늦었습니다.

제2외국어를 신청하는데 저와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된 극소수의 중학교 때 친구들은 저에게 불어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불어 선택.

학교 끝나고 이야기하는데 이 놈들이 진짜 불어 선택했냐고 하더군요.

불어하라고 해서 불어했다니까 장난이었는데 진짜 불어 선택했냐고 하더군요.

당시는 대학별 본고사가 있던 시절이었는데 소위 상위권 대학들은 제2외국어로 일어를 채택하지 않아서,

그 고등학교도 당시 처음으로 불어를 제2외국어로 신설한 상태였습니다.

즉,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공부 잘하던 놈들이 선택하던 것이 불어였던 거죠.

그래서 졸지에 불어반이 되었습니다.

전교에서 불어반은 2반이 있었습니다.

나름 두 반은 서로 경쟁이 심했고 반 담임끼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 반에는 상대적으로 괴짜들이 많이 모였고 다른 한반에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 스타일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고등학교 들어가면 원래 등수 만큼 등수가 떨어진다고 해서 반에서 꼴찌하는 거 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 그냥 중학교 때 성적이 그대로 가더군요.

고등학교에서는 조금 올라서 15등 내외.

수능 모의고사 보면 10등 내외.

뭐...중학교 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제 대학이 가까워 졌으니 조금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수업 시간에 자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학교에서 강제로 잡아 두니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게 되더군요.

아침 등교 시간은 7시, 저녁 하교 시간은 밤 9시 30분.

공부를 하더라도 여전히 가장 우선은 내가 좋아하는 책 읽기 ㅡㅡ;;

부모님도 교육에 대해서는 방임형이시라 시험 성적에 대해서 딱히 뭐라 하지 않으셨었네요.

그래서 더더욱 놀기 좋았습니다.

당시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연극에 꽂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 고등부에서 주최하는 문학의 밤 행사가 있었는데 선배들이 참여자를 뽑고 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이 단체로 아무 것도 하지 말자고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선배들이 따로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그 선배들은 소위 말하는 1진류의 형들.

" 니네 연극해라 "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지만 눈동자가 불타고 있었죠.

아...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저희는 단체로 연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 넘게 연습을 하면서도 이걸 도대체 왜 하나 싶었죠.

그러나 공연 당일 홀로 무대 위에 올라가서 시작을 기다리다 환하게 켜지는 조명

조명 너머로 희미하게 뿌연 먼지들 속에 윤곽만 보이던 관객들을 바라 보며 던진 첫 대사.

" 또 죽었어? "

그리고 그 뒤로 3년 동안 연극에 대한 열병에 빠졌었습니다.

하다 못해 수험생이던 고3 때도 틈틈이 연습하던 후배들 찾아가서 도와줄 정도 였었으니까요.

그 때, 같이 연극에 빠졌던 친구 놈은 연극 때문에 지가 사관학교 떨어졌다고 할 정도 였었습니다.

2학년이 되고 전 문과를 선택했습니다.

중학교 때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양판소 만화의 주인공의 직업이 회계사 겸 M&A 전문가 였기 때문입니다.

2학년이 되자 같은 반의 절반 정도는 이과로 가고 다른 불어반의 절반 정도가 문과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길게는 3년 짧게는 2년을 같은 반으로 쭉 학창시절을 보냈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자 모범생 같았더 스타일의 친구들은 죄다 이과반으로 가고,

괴짜 같은 놈들만 문과에 남았었습니다.

학년은 올라갔는데 오히려 공부는 1학년 때 보다 안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더군요.

야자 시간이 되면 이놈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모여서 토론하고 앉아 있습니다.

토론 내용은 공부랑 아무 상관 없는 내용.

2학년이 되자 성적이 조금 더 올랐습니다.

문과가 180명 정도 였는데 그 중에서 꾸준히 18-20등 정도.

반에서는 드디어 10등이 되었습니다.

수능 모의고사가 항상 내신 성적 보다 잘 나왔습니다.

본고사 모의고사도 내신 성적 보다는 점수가 잘 나왔었구요.

드디어 3학년이 되었습니다.

3학년이 되면 공부를 하자 했지만 첫 수능 모의고사 보고 좌절.

등수는 그대로인데 점수가 확 떨어져 버렸습니다.

에헤라디야~ 하고 놀기 시작했었죠.

그렇게 맞이한 여름 방학.

보충수업이 시작하는 첫 날이 바로 고등부 여름수련회가 시작되는 날.

담임에게 전화로 여름수련회에 간다고 했더니 담임이 미친놈 취급을 합니다.

분명 우리 학교는 미션스쿨인데???

수련회 가면 자퇴 시킨다는 담임의 협박을 쿨하게 씹고 여름수련회로 ㄱㄱㄱ

수련회 끝나고 학교에 가니 담임이 교실에 못 들어오게 합니다.

책상 의자 다 집어 던지고는 자퇴서 제출할 때 까지 절대로 교실에 못 들어온다고...

그 뒤로 보충수업기간이 끝날 때 까지 등교하면 복도에 서 있다가 보충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담임은 지나다니며 볼 때 마다 자퇴서 제출하라고 하고.

암튼...보충수업 마지막 날 담임이 "이 독한 놈"하더니 다시 수업에 들어오게 하더군요.

시간은 점점 흘러 가는데 딱히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특별히 공부를 전 보다 더 많이 하지도 적게 하지도 않았었죠.

수업 시간에는 자고 야자시간에는 딴 책 읽거나 친구들과 잡담...

그러다 한가지 사건이 생겼습니다.

한강에서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들과 함께 백일주를 마시고 집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에 깼습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 그래도 나름 12년 동안 대학 간다고 공부를 했는데 대학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난 재수하면 더 망할 테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면 분명히 대학에 떨어질 거고..

 그래 공부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날 부터 진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짜 공부란 것을 해봤습니다.

저의 기본 목표는 하루에 연습장 1권, 볼펜1자루를 다 쓰는 것 그리고 모의고사 1회 풀기 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수능 보기 전전날 까지 하루도 빼먹고 않고 지켰습니다.

저의 공부는 별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몇 시간이 걸리던 모의고사 1회분을 하루 종일 풀었습니다.

그리고 틀린 문제 확인하고...문법 공부는 아예 생략하고 영어 독해 지문 풀기랑 수리1(수학) 모의고사 문제를 1회분 추가로 풀었습니다.

항상 모의고사를 보면 점수를 다 까먹는 과목이 수리1 이었기 때문이었죠.

40점 만점이었는데 1학년 때 24점 맞아본 이후로는 단 한번도 20점을 넘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균 15점 정도 나왔었습니다. ㅡㅡ;;

이상하게 수학 공식이 머리 속에 남지를 않더군요.

수학의 정석 문제를 하도 많이 봐서 문제만 보면 바로 답이 튀어나올 정도 였지만 시험만 보면 점수는 ㅋㅋㅋㅋ

전 특이하게 거의 모든 문제를 방정식을 세워서 풀었었습니다. 

다만 방정식으로 해결이 안되는 삼각함수나 지수로그 쪽이 나오면 막히기 시작했죠 ㅠ.ㅠ

당시는 교회에 다닐 때라 지칠 때면 학교 끝나고 교회 지하실로 가서 혼자 기타를 쳤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드는 일상의 반복이었죠.

수능 한달 정도를 남겨 놓고는 최후의 수단으로 수리 1회분 풀던 것을 2회분으로 늘리고 

틀린 문제는  아예 풀이과정을 외워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조금씩 점수가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드디어 역사적인 수능 전날.

몸살 감기가 옴팡 걸려 버렸네요 ㅡㅡ;;

아직도 그 때 먹었던 약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화이투벤'

그리고 제 자리는 교실의 맨 끝자리 뒷문이 있는 곳 인데...다들 아시다 시피 그 자리는 쓰레기통 있던 자리..

책상에 앉으면 눈높이 까지 곰팡이가 피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악취가 심한 곳...몸살 이라 냄새를 못 맡는 것이 그나마 위안꺼리?

그래도 오전은 잘 버텼습니다.

오후에 점심 먹고 약을 한번 더 먹었다가 외국어 듣기 평가 시간에 자버렸네요 ㅡㅡ;;

화들짝 놀랐을 때는 이미 몇 문제가 흘러간 뒤....

시험을 끝내고 나니 드는 생각은 평범한 난이도였다 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것도 그렇다고 쉬운 것도 없었던 평범한 난이도 였습니다.

다만, 수학에서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방정식 세워서 풀 수 있는 문제가 다량으로 나와서 평소 보다 많이 쉬웠다는 것 정도?

그런 행운 뒤에는 악운이 있었으니 마지막 답안지 제출을 앞두고 못 푼 문제 찍다가 이미 풀어 놓은 3점 짜리 3문제에 이중마킹을 했다는 것.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그 세 문제가 다 맞춘 문제였다는 것 ㅠ.ㅠ

저와 대각선으로 앉은 다른 학교 학생이 있었는데 제 자리에서 그 친구 답안지가 다 보이는 것 이었습니다.

1교시에 문제를 다 풀고 약간 시간이 남아서 보는데 답안이 저와 비슷하더군요.

그래서 저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학생인 줄 알고 그 다음 부터는 신경을 껐었습니다.

나중에 수능이 끝나는데 순식간에 제가 시험 보던 교실로 엄청난 아이들이 몰려 오더군요.

뭔 일인가 했는데 다들 제가 컨닝이 가능했던 그 친구 주변으로 모이더니 시험 난이도를 묻더군요.

그 친구가 좀 어려웠다고 하니까 다른 학생들 반응이,

" 야, 전국등수가 어렵다고 하면 어쩌냐? '

아놔.....하늘이 주신 기회를 발로 차 버렸네 ㅠ.ㅠ

가채점을 해 보니 평소 모의고사 보다 성적이 잘 나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전 시험이 쉬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론은 재수구나 생각했죠.

다음 날 학교 가서 그냥 엎어져서 누워 있으니까 반친구들이 와서 위로 하더군요.

자기들도 시험 망쳤다고.

몇 점이냐고 묻길래 대답을 해줬다가 주변의 친구들에게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제 성적이 잘 나온 수준을 넘어 섰더군요.

그래도 제 생각은 변함없이 시험은 쉬웠고 본고사는 먼나라 이야기다 였습니다.

그래서 놀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본고사에서 만회한다고 열심히 본고사 준비하는데 저는 그냥 놀았습니다.

일단 공부 자체는 후회없이 해봤으니 됐다.

다만,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정도 였죠.

드디어 12월21일 성적표 배부날.

성적표를 반접어서 언어영역 부터 점수를 확인했습니다.

언어는 예상대로..수리1은..하고 열어 보는 순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28점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와~ 하면서 바로 끝까지 펼쳐서 백분위점수를 봤죠.

99.XX%

쓰바...수리1에서 찍는다고 이중마킹만 안했어도 ㅠ.ㅠ

그 때 까지 단 한번도 못 해 봤던 전교 1등을 마지막 수능 시험에서 해봤네요.

물론...내신이 워낙 안좋은 4등급이고 이미 한달 동안 본고사 준비 안하고 놀았기 때문에 안전빵으로 특차를 써서

제가 가겠다고 마음 먹었던 대학교 전공에 하나를 가기는 했습니다.

원서 쓸 때 담임은 또 미친 놈 소리하면서 버티다가 원서에 도장 찍어 주고,

교장은 몇 시간을 도장 안찍고 버티다가 결국 씨팔씨팔 거리면서 도장 찍어 주더군요.

암튼 그 뒤로 대학가서는 1학년 1학기 평점 0.53(F학점을 제외하고 이수학점만으로 나온 평점임에도 불구하고...)으로 학고,

1학년 2학기도 0점대로 학고.

2학년 1학기는 3고로 제적 안당하려고 겨우 커트라인만 넘기고..

제 인생에 있어서 딱 한번 불태웠던 시절은 딱 수능 100일 전 부터 수능 볼 때 까지 였네요.

그 이후로는 다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책이나 읽으면서 뻘짓하면서 보냈구요.

대학도 10년 다니고 등록도 10학기 하고 처음에는 졸업도 못해서 수료로 직장생활하고...

버티니까 졸업시켜 줘서 졸업 사진 한장 없고 ㅋㅋㅋ

암튼 뭐 그랬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