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보다가 문득 옛 생각에 ㅃ쳐서 쓴 글

복학 이후 3년 정도 좋아한 후배가 있었는데

대충 묘사하자면
귀여운데 야무진 모습이 좋았어요.
공부 잘 하고, 교우관계 훌륭하고, 학과 행사에도 적극적이고.

반면에 저는 소극적이라 성적도 그저 그렇고,
잘 놀지도 못 하고, 분위기 주도는 커녕 찬물 끼얹는거 잘 하는데
후배지만 참 '닮고싶다'고 느낀 여자애였어요.

일단 친해져야 하는데 그럴 기회조차 잡지 못해서 눈치 보던 와중에

동기들이랑 술 먹다가 발설해버린 사건이 일어났어요.
친구들이 "넌 도대체 언제 연애할 거냐, 너 혹시 게이냐"며 조여오다가
종국엔 엉뚱한 여자애랑 엮으려는 상황까지 가길래
"실은 좋아하는 애가 따로 있다"고 모면하려 한 것이 커져버렸어요. 사건이 사고가 됐어요.
듣지 말았어야 할 놈들이 들어버렸어요.

그 술자리에서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길래
도움따위 필요 없으니 무조건 함구하라고 당부했는데
그놈 둘이 결국 일을 벌였네요.

그 애랑 저를 같은 자리에 붙여주려는 게 눈에 띄게 늘었어요.
그 후배랑 같은 과고 같은 학년이라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일이 잦은데
학과 총회 때나 전공수업 때 옆자리에 앉히려 한다던가,
점심 같이 먹자고 한다던가, 또 뭐였더라?

저는 전혀 준비가 안 된 도움이고 필요치 않은 도움인데
덕분에 더 피해다니고, 더 숨기고, 수습하기 바빴습니다.
(이걸 도움이라 포장한 것도 웃기죠. 걔네는 여전히 "못 받아 먹은 네 잘못이지"라더군요)
제가 그토록 싫어하니까 이게 또 재미가 들렸는지
길에서 저랑 그애가 마주치기만 해도 옆에서 얼레리 꼴레리 하더라고요. 이때는 진짜 죽이고 싶었다.

나중엔 이 소문을
그 애랑 같이 다니는 무리의 여자애들에게도 퍼트린 모양이더군요.
한 후배가 갑자기 "선배. 말을 해줘야 알지, 말 안 하면 몰라요.(후배들이 제 동기들한테  오빠라 하면서도 저한테만 선배라 부르는데, 그만큼 안 친했음)" 이러는데
어우... 숨고 싶었음.

이쯤 되면 좋아했던 여자애도 웬 영문인지 눈치 챘을 텐데
저를 어떻게 여겼을까요?
'나는 아무 얘기 들은 바가 없는데 오빠들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저 선배가 나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녔나 본데?'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숨기고 피할수록 더 수렁에 빠지고
결국 저는 다른걸 핑계로 휴학하고.
가뜩이나 소극적인데 더욱 연애에 소극적이게 되었어요.

그 사고 이전에도 저는 그애와의 연애를 바랐다거나 고백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조별과제로 이야기하고 시험준비로 이야기하는 것에 만족했는데
그 사고로 인해 제 짝사랑 추억이 흑역사가 되어서
지금도 엄청 짜증납니다.

그리고, 여전히 모르겠어요.
주변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내 행동은 그게 최선이었나?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면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
자괴감도 드네요.



이 글 읽으시는 형님들, 아우님들.
누가 누굴 좋아한다는 소문, 제발 절대 퍼트리지 마세요.
당사자가 소문내달라 부탁해도 들어주지마세요.
이건 도와주는게 아니라 재 뿌리는 거예요.
받는 사람이 준비가 된 상태여야 보리밥 쌀밥이 되는 거지
준비도 안 됐는데 지르면 그냥 주먹질이죠.

이번 생은 글렀으니
그냥 모쏠 이토인으로 살면서
나라 구하는 방법이 뭘까나 고민해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