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한국인의 밥상’이 특별한 이유

기후변화 2021-02-26 (금) 13:10 조회 : 558 추천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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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미래]‘한국인의 밥상’이 특별한 이유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사람마다 장소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르다. 사람들은 대부분 공간에 대한 정보를 주로 시각으로 구축한다. 우리가 새로운 공간에 가면 휴대폰으로 사진부터 찍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장소를 기억하는 데 후각이 시각만큼 중요하다.

계기는 몇 해 전 쉰의 나이에 떠난 이탈리아 요리 유학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두어달 정도 지나자 나는 지독한 향수병에 빠졌다. 물 설고 말 선 그곳에서 나는 한국 음식이 많이 그리웠다. 그리움은 토속적 향취에 비례했다. 갓김치, 홍어회, 곱창전골, 물냉면, 청국장 등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한국에서는 김치가 없어도 별 문제가 없었던 내 몸은 통제불능이 되었다.

그때 한국 음식을 다룬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많이 봤다. 요리를 배우겠다고 이탈리아에까지 와서 정작 한국 음식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은 참 아이러니했다. 불 꺼진 이탈리아의 기숙사에서 늦은 밤 인터넷으로 열심히 본 프로그램의 하나가 한국방송공사 <한국인의 밥상>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이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고 있다.

향수병 탓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이야기가 ‘전통’이었다. 과장하면 수업시간마다 강사들이 단 한번도 전통을 이야기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실제 전통을 지키려는 이들의 모습은 놀라웠다. 이탈리아 농산품 가운데 와인을 빼면 가장 많이 수출하는 것이 치즈다. 대표적인 것이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다. 이 치즈를 만드는 우유는 오로지 풀을 먹인 젖소에서만 얻는다. 우유에 어떤 인위적인 화학물질도 첨가하지 않는다. 이유는 1000년 전 조상이 치즈를 만들던 우유와 똑같은 미생물이 들어 있는 우유를 얻기 위해서란다.

와인도 햄도 비슷하다. 이들은 1000년 넘게 이어져온 전통 음식을 원형에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 신화·역사와 같은 인문학적 상상력은 물론이고 양조학·미생물학 같은 과학적 방법론까지 동원한다. 그리고 온 지역 사람들이 자부심으로 음식을 지켜 나간다. 지역 셰프들도 이 전통적 재료를 이용해 최신 조리법으로 분자요리 등 새롭고 멋진 요리를 선보인다.

나는 ‘미생물’이라는 단어를 듣고나서야 내가 왜 그렇게 쿰쿰한 한식 메뉴를 그리워했는지를 깨달았다. 인간의 세포는 30조개쯤이지만 인간의 몸에는 약 100조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대부분 소화기관에 산다. 숫자만 놓고 보면 미생물이 내 몸의 실질적 주인인 셈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없었다. 미생물이 만드는 맛은 시각보다는 후각과 미각에 호소하는 원초성을 지닌다. 내 향수병의 정체는 미생물들의 반란이었던 셈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식생이 풍부한 한국은 발효문화가 발달해 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의 경험으로 우리의 전통 음식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 지역 음식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10년 동안 한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해당 지역의 식생과 음식을 다루어온 <한국인의 밥상>은 나에게 훌륭한 교과서다. <한국인의 밥상>은 지난 10년간 약 1400곳의 8000여가지 우리 음식을 소개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지방 소멸로 이내 사라질지도 모르는 각 지역의 토속적 음식의 연원과 현재적 모습을 담아왔다.

음식의 과거와 현재를 알면 이를 어떻게 새롭게 응용할지 아이디어가 생긴다. 나의 관심은 한식이 갖는 독특한 향기다. 이 향기는 한반도 고유의 미생물과 농수산물 그리고 이들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지혜가 빚어낸 것이다. 이 향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 음식이 가야 할 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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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의미: 개인들 간의 이해관계 대립이나 갈등을 조정하면서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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