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권양숙 사찰은 유죄, 명진스님 사찰은 무죄…왜?
유설희 기자 [email protected]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순형)는 지난 7일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권양숙 여사, 박원순 서울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게 한 혐의에는 유죄를, 명진 스님·배우 문성근씨 등의 동향을 파악하게 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국정원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따라 유무죄가 갈렸다.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즉 공무원에게 직권이 있다고 인정돼야만 범죄가 성립한다.

재판부는 국정원장에게는 국가보안사범을 수사할 법령상 직권이 있기 때문에 권 여사, 박 시장 사찰 지시는 유죄로 인정된다고 했다. 원 전 원장은 2011년 권 여사가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듣고 대북 관련 ㄱ국장에게 ‘북한 사람과 만나는지 확인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멀리서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박 시장에 대해서는 2012년 ‘박 시장이 일본에서 조총련 간부들을 만날지 모르니 미행·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재판부는 ‘형식적·외형적’으로 보면 국가보안사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휘권한을 행사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권 여사가 북한 사람과 만난다고 볼 만한 구체적 근거나 정황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직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박 시장 사찰 지시 혐의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직원들에게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명진 스님의 비위 정보를 수집하게 한 혐의는 직권남용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국정원법이 금지하고 있는 정치관여 행위지만, 국정원장에게는 정치관여 행위를 지시할 직권이 없다는 것이다. 직권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지만 ‘월권’(지위를 남용한 불법행위)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최근 법원은 같은 이유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공무원에게 다스 소송 지원 지시를 한 혐의,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 일선 재판부의 재판에 관여한 혐의 등에도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 없이 남용 없다’는 최근 법원 판결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용근 변호사는 “직권남용을 반드시 직권 범위 내에서 판단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며 “직권을 벗어난 행위에 대해 직권남용죄를 인정한 2011년 대법 판례도 있다”고 했다.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직권남용죄, 남용의 의미와 범위’ 논문에서 “직권남용죄의 남용 개념은 월권적 남용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이러한 해석은 국가 기능 행사의 공정성이라는 법익을 사회적 의미 맥락에 맞게 보호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