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는 미친 영화가 확실합니다.
서사도, 연기도, 연출도 모두 미쳤습니다.
고담시라는 부조리한 공간에서 자라나 부조리한 존재가 되어버린 아서 플렉이
하루하루를 무거운 돌을 산 위로 밀어올리는 시지프 마냥 높은 계단을 오르며 살아가다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를 인식하고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어 웃으며 계단을 내려오는 그 모습.
마치 조커가 영웅이고 그를 둘러싼 자들이 악인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미친 연출.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꼬는 모던 타임즈를 보며 웃고 떠드는 자본가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의 말마따나(물론 그의 본의는 좋은 의도였을지 모르겠으나)
부조리와 역설로 가득찬 세상과 인생을 미친듯이 풀어내는 영화였습니다.
게다가 사실 조커는 그냥 연쇄 살인마이고, 본인 말대로 정치에는 하등 관심도 없고, 그냥 미친 사람인데
그의 언행이 사람들의 도덕률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조커 본인은 그걸 좋아하죠.
고담이라는 부조리한 공간이 낳은 부조리한 존재이긴 합니다만, 그의 선택들은 지하철 3인방을 살해한 것 이외에는 정당화될만한 게 없죠.
그나마 지하철 3인방 사건이야 우발적이었고 정당방위에서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결국 정도가 지나쳤고 본인은 거기서 죄책감이 아닌 해방감을 느끼죠.
제가 자막을 놓친 건지 박지훈이 또 박지훈한 건지 모르겠지만, 조커의 노트에 이 영화의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글귀가 적혀있었는데,
'사람들은 네가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네가 해야만 하는(되어야만 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라는 의미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서 플렉의 삶은 본인이 원치 않았던 삶입니다. 생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원하지도 않은 가정에 입양되고 아동학대 당하고 미쳐돌아가는 세상 탓에 폭력을 당하고 등등... 본인이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런 삶이어도 우리는 그 사람에게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뭔가 지킬 건 지키면서 할 건 하면서 살라고 하죠.
그러던 그는 최초의 살인 이후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고, 본인의 선택으로 조커가 됩니다.
영화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 조커의 모습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반의 말을 듣고 친부를 살해한 스메르쟈코프의 모습이기도 하고, <죄와 벌>에서 영웅주의에 빠져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 인물들과 조커의 다른 점이라면, 그 주인공들은 살인 후 자살하거나 고통에 시달리기라도 하는데 조커는 해방감을 느낀다는 거?
그러니까 조커는 그냥 사회적 상식이나 보편적 윤리와는 벗어난 미친놈입니다. 코미디 극장에서도 남들과는 다른 타이밍에서 자꾸 웃죠? 조커는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놈입니다. 다만 그게 살인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정도의 미친놈이라는 게 문제죠. 뭐 이마저도 아동학대의 산물이다라고 정상참작 사유를 조금이나마 들이댈 수 있기야 하겠습니다만은...
여튼 영화를 보는 관객마저도 조커를 영웅처럼 생각하게 하고 죽은 사람들은 사실 죽을 죄까지 지은 사람들이 아닌데도 죽어도 싼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이로서 관객마저도 조커가 의도한대로 혼란에 동참시켜버리는 미친 연기와 미친 연출...
왜 미국에서 R등급 판정을 받았는지 심히 이해가 됩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약쟁이들이나 중2병들이 이 영화를 보면 똑같은 짓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할 게 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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