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보거나 올라타거나’ 항공기 체중 재는 방법

성공한 다이어터들이 꼽는 비법 중 하나가 식단 일기라죠. 하루 세끼 먹은 음식과 그날의 체중 컨디션을 기록하는 겁니다. 적는 것만으로도 의지를 다질 수 있는 방법인데요. 항공기도 마치 다이어터처럼 꼬박꼬박 체중을 재고, 체중과 관련해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기록합니다. 어느 항공기의 다이어리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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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일. 날씨 맑음.

나는 대형 객실 항공기.

지난 3개월간 4.5㎏이 늘었다.

다음 달에는 3년 만에 다시 체중계에 올라야 한다.

얼마 전 다이닝룸의 싱크대를 교체하고 랜딩기어의 부품을 갈았다.

체중이 지나치게 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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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거워지면 떠오르기는 더 힘들고, 설계와는 달리 무게중심이라도 변한다면 비행 안전과 직결되는 건 당연한 이치겠죠. 항공기 역시 몸무게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항공기는 어떻게 체중을 잴까요? 체중계에 올라타거나 저울에 달면 될까요. 과연 초대형 체중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쉽지만 다이어트에 유익한 정보는 아니라는 점, 참고해 주세요.

‘나이 들면 살찐다.’ 어른들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항공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무게가 늘어납니다. 특히 대형 항공기일수록 기체 내에 먼지와 습기가 차는 구석, 아주 작은 틈 등이 너무 많죠. 또 앞서 일기 내용처럼 수년간에 걸쳐 새로운 서비스, 수리, 재 도장, 인테리어 용품 및 구조변경 등을 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는 상당한 무게 변화를 가져오는데요. 항공기 무게 측정이 최소 3~4년마다 필수과정으로 진행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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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기 중량 및 평형 관리 기준법」에서는 20인승 이상, 최대 이륙중량 2만 파운드(lb, 약 9,000㎏) 이상의 항공기는 측정 빈도를 36개월 이내로 규정, 이를 어기면 비행이 불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체중을 잰 지 3년이 안 되었더라도 무게중심(평형)을 포함해 중량에 영향을 주는 개조나 변경은 빠짐없이 기록해야 하지요. 앞서 일지 내용을 다시 보시면 4.5㎏이 늘었다고 적혀있는데요. 이렇게 항공기의 규모에 따라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중량 변경 증가 기준치가 조금씩 다릅니다. 대형 객실 항공기는 4.5㎏, 중형은 2.3㎏, 소형은 0.45㎏ 이상이 기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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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량의 변화는 운항자중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어려운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운항자중’이란 비행기의 자중(empty weight)에 부가장비와 승무원의 무게를 더한 무게를 뜻합니다. 혹은 총 무게에서 연료와 승객·화물 등의 페이로드(돈을 지불하는 무게)를 뺀 무게입니다. ‘자중’이라는 단어도 낯선데요. 항공기에서 연료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은(쓰지 않는 연료라면 무관) 무게를 뜻하죠. 해당 항공기에 싣고 운반할 수 있는 최대 허용 중량은 운항자중에 따라 결정됩니다. 말하자면 항공기 체중이 우리의 비행기 티켓 수량을 결정하는 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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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 것 같습니다. 이제 두근거리는 순간이네요. 체중계에 올라 그동안 얼마나 몸무게가 늘었는지, 표정 하나 없는 ‘숫자’의 맨얼굴과 마주해야 합니다. 몸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면 자칫 허용 탑재량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연료탱크는 모두 비워두고 대기하고 있는데요. 커튼, 쿠션, 카펫, 안전카드, 기내 잡지, 휴지 등등의 무게는 이미 데이터 베이스가 마련돼 있죠. 지금 막 항공기 체중계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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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랜딩기어 앞에 각각 체중계가 길게 놓입니다. 랜딩기어의 양쪽으로 휠이 달려있죠. 양쪽 다 필요합니다. 한 세트씩, 총 6세트의 체중계 설치가 완료됩니다. 그 위를 항공기가 아주 천천히 밟고 올라서서 굴러갑니다. 지상조업장비(땅에서 항공기 운용을 돕는 특수 자동차)가 체중계에 오를 수 있게 당겨주고 있습니다. 각 휠이 체중계에 이르렀을 때 그 위에 정지. 이동 장비를 떼어내고 전자저울의 숫자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휠마다 카운팅 된 무게가 유·무선 컴퓨터 장비에 뜨네요. 이 무게를 다 합치면 전체 체중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하죠?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이 과정을 3번 정도 반복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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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항공기가 체중을 재러 가는 게 아니라 체중계가 옵니다. 저울은 집에서 헬스장에서 쓰는 전자저울과 매우 흡사하죠. 다만 측정할 수 있는 중량 범위가 어마어마합니다. 사람이 쓰는 저울은 200㎏ 정도 잴 수 있는데요. 항공기 저울은 휠 하나 당 최대 2만㎏(6만 파운드)까지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 휠 당 무게가 이 수치를 거의 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요. 무거운 항공기는 대부분 휠이 더 많죠. 에어버스 A380이 좋은 예입니다. 이 초대형 여객기는 지상에서 거대한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22개의 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면에 부과되는 최대 압력이 각 휠로 분산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22개의 체중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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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개한 중량 측정 방식을 플랫폼 시스템이라고 부르는데요. 사실상 전 세계 항공기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휠 개수에 맞게 조립해서 쓰면 되기 때문에 여러 항공기에서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죠. 다만 플랫폼보다 타이어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으면 정확한 측정이 어려워서 이때는 다른 방법으로 중량 측정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많이 쓰는 체중계의 이름이 잭/로드셀(load cells on jacks) 저울. 이름부터 까다롭게 느껴지는데요. 잭과 로드셀(힘센서)을 합친 기계장치라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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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자동차 타이어를 갈 때처럼 무거운 걸 들어 올릴 때 쓰는 기구이죠. ‘로드셀’은 힘센서 입니다. 힘이나 하중을 측정하기 위한 변환기인데요. 출력된 전기적 신호를 힘으로 변환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로드셀 내부에는 4개의 변형률게이지들이 부착되어 히스톤 브리지를 구성하고 힘이 가해지면 이 브리지가 반응하여 출력 신호를 발생시켜줍니다. 이 출력 신호가 얼마의 힘인지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브리지 출력과 알고 있는 힘과의 관계도를 사전에 획득하여야 하는 교정작업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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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여러 개의 잭들로 항공기를 밀어 올리고 거기에 달린 로드셀에서 측정되는 힘들로부터 항공기 중량과 무게중심을 계산하는 방법입니다. 실제 잭/로드셀 측정 장면을 보면 랜딩기어가 모두 땅에서 약간 떨어져 있습니다. 항공기를 들어봐서 얼마나 무거운 지를 보는 거지요. 참고로 누리호(한국형 발사체)의 추진제 탱크가 적절한 압력대로 설계됐는지 확인할 때도 이 변형률 게이지들을 부착해 물을 가득 채운 탱크의 변형률을 기록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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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탱크에 쓰는 변형률센서 용도는?  https://blog.naver.com/karipr/22166465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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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체중계는 모든 항공기에서 다 맞는 건 아닌데요. 항공기 동체 하단이나 랜딩기어 등에 로드셀을 끼울 수 있는 하드포인트가 마련돼 있어야 하죠. 없다고 해도 장착에 필요한 추가 장비들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플랫폼보다는 측정비용이 저렴하고, 대부분의 측정 서비스 업체가 항공기에 적합한 장비 지원을 하고 있어서 보통은 플랫폼 시스템과, 젝/로드 셀 저울 두 가지 측정 서비스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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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계에 오른 대형 여객기들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요? 에어버스 A330은 12만kg, 보잉사의 777-200은 14만3,000kg, 777-300은 16만6,000kg, 747은 18만kg이 평균 무게입니다. 이 무게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마지막 한 방울의 연료도 비워내고, 승무원도 파일럿도 없는 상태에서의 무게인데요. 그 외에도 식수와 변기 물까지 남김없이 빼낸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지상의 기술자들은 정말로 ‘모두 비어있고 건조한 상태’인지까지 깐깐하게 확인한다죠. 일단, 체중계에 오를 때는 좀 굶고 올라가는 게 인지상정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