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기초연구는 없다" 코로나 극복 터 닦은 7명 '황금거위상'

거위의 아버지' 팀 쿠퍼 의원

엉뚱하지만 인류를 구하고 황금알을 낳을 연구자들에게 수여하는 올해 ‘황금거위상( Golden Goose Awards )’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COVID-19· 코로나 19 ) 극복에 보탬이 된 연구를 진행한 3개 팀 과학자 7명에게 돌아갔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 AAAS ) 1일(현지시간) ‘제9회 황금거위상’ 수상자를 발표하며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정부 지원 연구가 빛을 발했다”며 “올해 수상자들은 정부지원금을 받은 기초과학 연구가 어떻게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고 코로나 19 라는 전 지구적 위기에서 생명을 구할 치료제를 개발하는지 보여준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황금거위상은 허황된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준 기초 연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2012 년 미 의회에서 정부 지원 연구 예산의 일부를 삭감하자 이에 반발한 짐 쿠퍼 하원의원(테네시주)의 주도로 기초 연구도 쓸모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제정했다. 이에 따라 후보군은 미 정부의 지원금을 받은 기초 연구로 제한된다. 쿠퍼 의원은 현재도 테네시주 하원의원이다.

이날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은 코로나 19 여파로 온라인 중계로 진행됐다. 쿠퍼 의원은 중계 영상에 등장해 “‘거위의 아버지’로 불리는 짐 쿠퍼”라고 운을 뗀 뒤 “때로는 우연히, 뜻하지 않은 발견들이 인류 발전을 이끌고,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과학에 감사함을 느끼는 해”라며 “이런 결실이 향후 미 정부가 과학기술 연구 예산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 국립보건원( NIH ) 과학자 4명은 사스( 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 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오랫동안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시도한 덕분에 올해 1월 코로나 19 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 -2 의 게놈이 해독되자마자 백신 후보물질을 찾아냈고, 이는 코로나 19 백신이 신속히 개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위치한 NIH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NIAID ) 백신연구센터 부소장인 바니 그레이엄과 연구원인 키즈메키아 코르벳은 2013 년 메르스 유행이 본격화되자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에 뛰어들어 스파이크 단백질의 구조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코르벳 연구원은 고등학생이던 20 년 전쯤 그레이엄 부소장을 멘토로 삼아 NIAID 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인체 세포에 침투할 때 세포 문을 여는 역할을 하는 만큼 항체를 생성하기 위한 백신 개발에도 중요하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실험실에서 불안정한 상태여서 구조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연구할 당시에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들 연구 덕분에 mRNA 백신을 개발한 미국 생명공학기업 모더나는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또 몬태나주에 있는 NIAID 의 에미 드 윗과 빈센트 먼스터 연구원은 NIH 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낙타 3마리를 구입해 메르스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지 연구했다. 이들은 2009 년 결혼한 부부이기도 하다. 먼스터 연구원은 “이 연구 덕분에 코로나 19 백신 후보와 항바이러스제를 테스트하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구조학자인 제이슨 맥러란 미 오스틴 텍사스대 교수와 그의 실험실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있는 대니얼 랩은 라마에서 만들어낸 특수 항체와 인간의 항체를 결합한 새로운 항체를 만들고, 이 항체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결합하면 바이러스의 체내 감염을 막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990 년대 과학자들은 라마, 알파카, 낙타 등의 낙타류가 ‘나노바디’로 알려진 일종의 항체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은 항체의 일부분만 인공적으로 제조한 나노 단백질을 나노바디로 부른다.

코로나 19 가 출현하자마자 맥러란 교수팀은 스파이크 단백질의 핵심 부위에 단단히 결합해 인간 세포 감염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항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겨울( Winter )’이라는 이름의 라마에서 얻은 항체를 이용했다. 이 연구는 코로나 19 항체치료제 개발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테네시주 내슈빌에 위치한 밴더빌트대 교수이자 밴더빌트 백신센터 소장인 제임스 크로우는 오랫동안 뎅기열, 에볼라, 에이즈( AIDS· 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HIV ), 노로, 로타, 지카 등 다양한 바이러스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를 만들어왔다.

크로우 교수팀은 올해 1월 초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19 유행 소식을 접한 뒤 환자의 혈액 샘플을 공수해 수천 개의 단일클론항체를 만들었고, 이들을 테스트한 뒤 가장 효과가 높은 항체를 제약사로 보냈다. 크로우 교수팀이 발굴한 항체 후보는 현재 5개의 코로나 19 치료제 3상 임상시험에 사용되고 있다.

크로우 교수는 시애틀에서 미국의 첫 코로나 19 환자가 발생 당시를 회상하며 “토요일 밤에 시애틀에 있는 환자의 혈액 샘플을 내슈빌로 공수해와야 했다”며 “밴더빌트대 총장에게 페덱스 최고경영자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요청까지 한 덕분에 다행히 일요일 오전에 샘플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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