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MLB 캠프] 김광현이 밝힌 50구 불펜피칭의 배경과 절박함

<스프링캠프 첫 불펜피칭에서 50구를 소화한 바람에 현지 기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김광현. 그가 속도감 있게 캠프를 시작한 이유가 있었다.(사진=이영미)>

김광현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으로 첫 불펜피칭을 시작하자 필드에서 몸을 풀던 투수들이 모두 나와 김광현의 투구를 지켜봤다. 김광현의 공을 받고 있는 포수 호세 고도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투수에게 힘을 실어준다. 많은 한국 취재진은 물론 카디널스 담당 현지 기자들, 구단 관계자들까지 한국에서 온 ‘루키’ 김광현의 불펜피칭에 관심을 쏟았다. 낯선 환경, 처음 만나는 사람들, 현지 언론에 ‘락스타’로 소개될 만큼 미디어의 뜨거운 취재 열기 등 김광현으로서는 이 모든 부분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즐기고 싶어 했다. 그래야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1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로저 딘 스타디움 훈련장에서 김광현은 캠프 입성 후 첫 번째 불펜피칭을 선보였다. 그런데 50개의 공을 던지는 김광현을 보고 카디널스 전담 기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첫 불펜피칭에서 50구를 소화하는 투수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김광현의 불펜피칭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카디널스 투수들.(사진=이영미)>

불펜피칭 첫 날부터 50구를?

“김광현의 투구를 오늘 처음 봤는데 매우 깔끔하고 정확하게 던지는 것 같다.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부터 공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자연스럽다. 더 많은 걸 보고 배우고 싶다.” -매튜 리베라토레

“김광현의 성격이 아주 좋아 보인다. 서로 알아가는 단계인데 모든 선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왼손 투수라 그의 불펜피칭을 더욱 집중해서 살펴봤다. 주무기가 슬라이더라고 들었다. 김광현으로부터 직접 슬라이더를 배우고 싶다.” -롭 카민스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김광현의 불펜피칭을 지켜본 두 명의 마이너리그 투수들은 김광현이 어떤 유형의 투수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한국 취재진을 향한 ‘립 서비스’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김광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았다.

현지 시간으로 오전 9시20분에 시작된 김광현의 불펜피칭은 50구를 던진 후 마무리됐다. 직구 70%, 변화구 30%를 섞어 던진 김광현은 피칭 후반부에 80~90% 전력의 투구로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이날 김광현과 배터리를 이룬 마이너리그 포수 호세 고도이는 김광현의 불펜피칭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김광현은 공을 던질 때 편안해 보였고 모든 투구들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 채 정확히 미트에 꽂혔다. 특히 피니쉬 동작이 매우 독특해 보이더라. 그의 공을 받기 위해 방향을 틀거나 움직이지 않아도 됐다. 그는 상당히 안정된 제구를 보여줬다.”

MLB.com의 애니 라저스 기자도 “포수가 계속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서 “김광현의 딜리버리가 아주 매끄러웠는데 그가 어느 포지션에 있든 카디널스에 필요한 선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의 칼럼니스트 릭 험멜도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김광현의 투구가 매끄럽고 정확한 점이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는 불펜피칭을 길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긴 세션이 이어졌음에도 던지는 공들이 모두 파워풀했다. 포수의 표정과 끄덕임에서 김광현의 공에 흐트러짐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선발로 나설지 불펜에서 활약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디널스 팀에서 가치 있는 선수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릭 험멜은 앞으로 김광현이 타자를 상대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iframe width="544" height="306" src="https://tv.naver.com/embed/12310130?autoPlay=true" frameborder="no"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 allowfullscreen="" allow="autoplay"></iframe>

긴 불펜 세션의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

앞선 애니 라저스, 릭 험멜 기자를 포함해 세인트 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의 데릭 굴드 기자도 비슷한 궁금증을 나타냈다. 왜 불펜피칭 첫 날부터 김광현이 50구를 던졌느냐 하는 내용이다.

“김광현은 운동신경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투구 동작이 부드럽고 피니쉬 라인이 깔끔한 것은 물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정확히 공을 꽂아 넣는다. 그 동작이 일정하게 이어지는 게 그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뛰어난 운동 신경과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스킬, 투구폼에만 신경 쓰지 않고 힘의 적당한 분배와 정확한 자세에서 나오는 딜리버리만 봐도 이상적인 투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광현처럼 첫 불펜피칭에서 50여 개의 공을 던지는 투수는 흔치 않다. 혹시 그가 왜 오늘 50개나 되는 공을 던졌는지 알고 있나.”

데릭 굴드 기자는 김광현과 함께 불펜피칭에 나선 브렛 세실을 예로 들었다.

“브렛 세실은 김광현처럼 전력을 다해 던지지 않았고, 투구수도 20여개 안팎이었다. 그런데 김광현은 무려 50구를 소화했다. 한국의 선발 투수들은 원래 이런 템포로 캠프를 준비하는지 궁금하다.”

김광현과 캐치볼은 물론 불펜피칭을 함께 소화한 브렛 세실은 불펜피칭 후 ‘럭(ruck)’이라고 불리는 웨이트트레이닝 장비를 한 채 몇몇 선수들과 필드를 산책했다. 클럽하우스로 들어가기 전 기자와 만난 그는 ‘럭’의 활용도에 대해 묻자 “가슴과 등 근육을 활성화시키는 장비로, 보통 군대에서 50파운드 정도의 방비를 착용하지만 내가 한 것은 23파운드 밖에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캠프 입성 후 20여 개의 공을 던지며 첫 번째 불펜피칭을 마친 브렛 세실은 김광현이 50개의 공을 던진 사실을 떠올린 후 “나도 그처럼 워밍업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그는 많은 공을 던지면서도 일정한 투구폼을 보였다. 오늘 그의 불펜피칭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진 위. 김광현의 불펜피칭 때 호흡을 맞춘 불펜 포수, 호세 고도이. 사진 아래. 캐치볼은 물론 김광현과 함께 불펜피칭을 소화한 브렛 세실. ‘럭’ 장비를 착용한 모습이다. (사진=이영미)>

‘다 계획이 있는’ 김광현과 50구

그렇다면 김광현은 스프링캠프 첫 불펜피칭에서 왜 50구를 던질 수밖에 없었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모든 건 그가 세운 스케줄표 때문이었다. 김광현의 설명을 들어보자.

“오키나와 개인 훈련서부터 SK 와이번스 캠프 때까지 이미 20개, 30개, 35개, 40개의 불펜피칭을 했기 때문에 오늘 50개의 불펜피칭을 소화한 것이다. (이유를 묻자) 이미 구단으로부터 시범경기 등판 스케줄을 받았고, 22일(한국 시간, 23일) 시범 경기 첫 등판이 예정돼 있는 상태다. 다음 불펜피칭에서 60개를 던진 다음 라이브피칭까지 마치고 시범경기에 나서려면 지금과 같은 투구수가 맞다. 나는 이곳에서 인정받은 선수가 아니다. 스프링캠프 동안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루키’다. 다른 투수들과 같은 보폭으로 캠프를 진행할 수 없는 것이다.”

김광현은 이날 불펜피칭 때 한국에서의 루틴을 그대로 유지해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SK에서 불펜피칭할 때도 7개는 직구, 3개는 변화구를 던졌다. 직구를 던지다 보면 굳이 카운트하지 않아도 변화구 던질 타이밍을 느끼게 된다. 오늘 불펜피칭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광현은 불펜피칭을 마치고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직구 70%, 변화구 30%를 던졌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7개+3개를 5세트씩 소화했다는 내용이다.

한편 로저 딘 스타디움 훈련장 출입구에서 자원봉사로 일하는 파올라(68)와 레이(75) 씨는 김광현을 취재하는 한국 취재진에게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스프링캠프 자원봉사자로 3년 째 일하고 있다는 파올라 씨는 카디널스 훈련장에 이토록 많은 기자들이 몰려든 건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거리상으로 아주 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한 팀, 한 선수를 응원하고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이곳에 모였다는 건 정말 감동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바빠졌고, 지루할 틈이 없다(웃음). 김광현을 이틀 째 보고 있는데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매우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가 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보고 싶고 그가 원하는 목표를 꼭 이루길 바란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서 자원봉사로 일하는 레이(왼쪽) 씨와 파올라 씨. 그들은 아침 출근할 때마다 보이는 김광현의 인간적인 면모를 높이 평가했다.(사진=이영미)>

<미국 플로리다=이영미 기자, 통역 채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