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문턱 더 높아져…금리인하 무색
김은성 기자 [email protected]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가 기준금리와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지난 14일자 고정금리형(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4주 사이 0.29∼0.55%포인트 올랐다. 기준금리를 1~2회 인상했을 때 뒤따르는 수준의 오름 폭이다.
예금금리가 내려가지 않고 대출금리가 오르는 것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은행을 통한 유동성 추가 공급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금융기관 간 초단기금리인 콜금리를 낮추고 장·단기 시장금리 하락, 예금·대출금리 하락 등의 순환 구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연결고리가 끊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추가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기 부양 효과도 떨어진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예금·대출금리가 다른 방향을 향하는 요인은 시장금리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당일 연 1.320%에서 이달 8일 1.518%로 0.198%포인트 올랐다. 지난번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인 7월 18일 1.345%이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8월 19일 1.093%로 저점을 찍은 이후 우상향 곡선을 나타내고 있다.
10월 기준금리 인하에 시장금리는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시장금리의 이 같은 흐름은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낮추지 못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시장금리와 연동된 대출금리는 오름세로 전환했고, 예금금리는 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낮췄지만, KB국민과 신한, 우리, KEB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동참하지 않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후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되레 회수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 입장에선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가 발등의 불이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예대율(대출·예금 비율) 규제는 예대율을 산정할 때 가계대출은 가중치를 15% 상향하고 기업대출은 15% 하향 조정하는 방식이다. 주택대출로 돈을 버는 국내 시중은행들의 영업구조에서 산식을 바꾸면 예대율이 100%를 넘기는 은행이 생길 수 있다.
은행들 입장에선 예금금리를 높게 가져가면서 예금을 유지·추가 유치하고 가계대출 금리는 높여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규제 시행 시점은 내년 1월부터로, 남은 2개월 동안 예대율을 100% 이내로 맞춰놔야 한다. 연말까지 맞춰야 하는 대출 총량 규제도 현안이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을 5%대로 제한하고 있다. 가계대출을 이미 6% 이상으로 늘린 은행 입장에선 이달과 내달에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일부 은행들이 시장금리 인상분뿐 아니라 가산금리나 우대금리까지 조정하면서 대출금리를 끌어올리는 것도 가격을 올려 수요를 통제하려는 취지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난번 기준금리 인하도 대출 증가로 연결되지 않았다. 한은이 지난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지만 지난 8월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3000억원에 그쳤다. 2018년 8월의 6조6000억원, 2017년 8월의 8조8000억원에 미치지 못한 수치다.
9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3조1000억원이었다. 2018년 9월의 6조1000억원, 2017년 9월의 4조4000억원을 크게 밑돌았다. 올해 들어 9월까지 누적 가계대출 증가액은 33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조1000억원, 2017년 같은 기간의 64조5000억원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기준금리를 낮춰도 되레 신용이 위축되자 규제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대출 규제가 강해 정책금리를 낮춰도 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며 “금융당국이 경기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 대출 규제를 재점검할 시점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책금리 인하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은 먼저 시장금리 흐름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맞고, 통화정책의 시장 전달 경로를 살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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