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 교수 “박삼구·조원태·산은은 이익…주주와 국민은 손해”
임아영 기자 [email protected]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에 반대하며 사모펀드 KCGI가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양대 항공사의 합병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게 됐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49)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회사 정관이 상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손을 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달 16일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합병방안을 발표한 뒤 양사 합병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법원은 1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에 반대하며 사모펀드 KCGI가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2가지 이유를 들었다. 제3자 유상증자 신주발행 당시 한진칼은 ‘사업상 중요한 자본 제휴’와 ‘긴급한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2일 고려대 경영본관에서 만난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궤변의 궤변을 늘어놓은 판결”이라 비판했다.
산업은행은 코로나19로 경영난에 빠진 두 항공사를 통합하기 위해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하고, 이중 5000억원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주를 배정받기로 했다. KCGI를 비롯한 3자 연합 측은 이같은 산은의 한진칼 투자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수단이자 특혜라며 반대해왔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진칼은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을 주요 주주로 확보함으로써 자체 재무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항공사 통합에 필요한 자금을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산업은행은 그 관리하에 있던 아시아나항공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한진칼의 경영에 참여하여 그간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온 항공사 간의 통합 과정을 효율적으로 감독할 수 있게 된다.”
이 교수는 “상법에 없는 ‘자본 제휴’를 들었는데 정의와 방식에서 모두 틀렸다”고 비판했다. 상법 제418조 1항은 주주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 신주의 배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정관에 따라 주주 외의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는데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한다. 이 교수는 “이렇게 중요한 자본 제휴라면 실사가 끝난 후에 결정해야 했다. 이 판결은 상법은 껍데기고 회사 정관이 상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와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이번 합병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이라 보십니까.
“이번 거래로 이익을 보는 쪽와 손해를 보는 쪽을 나눠보면 문제 이해가 쉽습니다. 구조조정은 대주주, 채권단, 노조의 3자의 고통분담이 원칙이지만 누가 그 고통을 분담하고 있느냐는 것이죠. 이같은 사태까지 오게 만든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인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은 앞으로 아시아나가 대한항공에 인수되면 수백억원의 인수대금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산은도 손해볼 것이 없죠. 합병하면 구조조정 없다고 말할 만큼 노동의 가치가 중요하면 채권단이 고통 분담해서 이자율 조정해줘야죠. 지금 아시아나 직원들은 돌아가며 무급휴직 중이지만 회사가 이자 수백억원은 그대로 부담하고 있어요. 가령 1년에 300억원만 조정된다하더라도 평균 임금 5000만원이라면 600명이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채권단은 고통분담하는 몫이 없습니다.
한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새 회사를 얻게 됩니다. 박삼구 회장, 이동걸 산은 회장, 조 회장 모두 손해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손실은 한진칼, 대한항공 주주들이 부담하게 되고 앞으로 구조조정이 없다 공언했으니 세금도 더 투입되어야 할텐데 국민도 손해인 거죠. 산은은 국민과 주주는 손해보고 이익을 보는 자는 명백한 이 구조를 ‘국가 경제를 위한 길, 항공산업 재편을 위한 길’이라며 프레임을 뒤집어 놨습니다.”
-경제개혁연대가 오늘 산은이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면 한진칼 유상증자 참여 시기를 내년 초로 미뤄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 단체는 “급하지 않은 한진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굳이 주주명부가 폐쇄되는 올해 말 이전에 추진해 2021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약 10%의 의결권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5000억원의 산은 대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내년 3월 대한항공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때까지 아무런 사용처가 없다”고 밝혔는데요.
“경제개혁연대 말이 맞습니다. 산업은행은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지 않아야 합니다. 증자 몇 개월 넘긴다고 큰 문제 생기지 않지만 개입하는 순간 박삼구 회장 탈출 기회를 줬고 조원태 회장 명줄 이어준 것에 대한 비판이 커질 것입니다.”
-이제 양사 합병은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공정위원회의 결정이 남았습니다.
“문제는 재판부가 ‘한진칼이 대한항공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시장에서 유일한 국적 항공사로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법원이 독점적 지위라는 것을 인정해 버렸는데요. 이제 공정위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습니다. 파산 위기였다는 회사였다는 논거밖에 남지 않는데 파산할 회사를 왜 남의 회사 주주 돈으로 인수했는지 다시 도돌이표 논쟁이 나올 것입니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합병 이후 인력 구조조정이 없다고 말합니다. 가능할까요.
“저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양사 구조에서 합병 이후 시너지 나는 곳은 MRO(항공정비) 분야 외에 보이지 않는데 본사 인원과는 상관없는 얘기거든요. 자연감소하는 인력이 어떤 직군인지도 설명이 없고 이 자연감소분 인력이 정확히 몇 명이고 휴직률 몇 퍼센트를 가정한 것이며 임금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자신이 있다면 숫자를 가지고 얘기해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도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산은이 진정성을 보여줄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산은이 경영권 분쟁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한진칼과의 이면 계약이 없다고 공시하면 됩니다. 또 박삼구 회장이 빠져나갈 기회를 주지 말고 채권단도 손실 부담해야 하고요. 산은이 건전한 경영 감시자로 역할을 하겠다고 한 만큼 사외이사, 윤리경영위원회 등 자리에 어떤 인사들이 선임되는지가 산은의 의지를 볼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누가 봐도 중립적이고 독립적이라 인정할 만한 사람들을 추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해주신다면요.
“한진칼, 산은을 위해 말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주주와 일반 투자자, 국민들 위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게 문제고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주주들과 국민들에게도 면이 설 것입니다. 너무 비판만 한 것 같은데 정말 진심으로 합병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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