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아빠가 되었다

1화입니다.

총 5화까지 업로드 되었으며, 뒷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링크입니다.

https://novel.munpia.com/296775

“후우······.”

긴 한숨을 뱉어낸 사내가 어두컴컴한 반지하실에 주저앉았다.

유하준.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기획사 G&Y 엔터의 실장이자 3년째 4인조 걸그룹 레아를 맡은 매니저였다.

아니, 말이 좋아 실장이지 결국 연차가 꾸역꾸역 쌓여 올라간 무능력한 매니저에 불과했다.

‘레아? 어딜 데뷔하고 3년 동안 성공 못 한 그 실패작하고 우리 애들을 비벼?’

오늘만 해도 그랬다. 

새 걸그룹 론칭을 앞둔 박태준 실장이 그리 지껄였다. 

레아는 실패작이라고. 

유하준은 그런 얘기를 듣고도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3군조차 되지 못하는 걸그룹. 열 명에게 레아를 아냐고 물으면 아홉은 모른다고 하고, 남은 한 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냐고 답할 정도로 레아의 인지도는 형편없었다.

‘회사에서 돈 처발라서 뮤비랑 곡 만들어주면 뭐 해? 매번 내는 앨범 처참하게 말아먹어서 투자한 돈도 회수하지 못할 판국이구만.’

작년 이즈음 이사회에서 레아를 버리기로 결정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보다는 일찌감치 새 그룹을 만드는 게 회사 차원에서 이득이라나.

레아가 지금까지 해체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멤버 전원이 젊다는 것과 계약 기간이 2년 이상 남아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막말로 쟤들이 무슨 죄냐? 다 능력이라곤 하나 없는 매니저 잘못 만나서 재능 한 번 못 펼쳐보고 인생 끝난 거지.’

박태준 실장의 말처럼 멤버들은 개개인의 재능 뿐 아니라 각각 비주얼 센터를 맡아도 될 정도로 외모가 출중했다.

배우 전문 소속사인 G&Y 엔터가 처음 선보인 걸그룹인 만큼 기대도 컸다. 

그럼에도 레아는 성공하지 못했다. 

회사가 일을 못 했다. 컨셉이 맞지 않았다. 노래가 구졌다. 

한 번 나열하기 시작하면 실패한 원인을 끝도 없이 늘어 놀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운이었다.

하필이면 레아 데뷔 당시 걸그룹에 초강세를 보이는 3대 엔터에서 잇따라 새로운 걸그룹을 론칭한 것이다.

배우 전문 소속사인 G&Y는 자체 프로듀싱 팀조차 가춰지지 않은 회사였고, 그런 수준으로 3대 엔터를 이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결국 생에 가장 화려해야 할 데뷔가 완벽하게 묻히며 인지도는 내내 바닥만 기는 중이었다. 

‘대중은 원래 새로운 걸 원해. 3년 동안 성공 못한 걸그룹? 그딴 건 줘도 안 먹지 새끼야. 난 실패할 줄 알았다고.’

젠장. 유하준이 식탁 위에 올려둔 맥주를 으깨듯 움켜쥐었다. 하필이면 이 모든 대화를 레아의 막내가 듣고 있었고, 또 하필이면 오늘이 모든 열정과 노력을 끌어모아 3집 앨범을 론칭한 날이었다.

그런 앨범 전곡이 차트 100위권은 고사하고 200위권에도 오르지 못한 체 빛의 속도로 광탈했으니 완벽히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게 어떤 앨범인데.”

유하준이 혼자 중얼거리며 재차 맥주캔을 기울였다. 

프로듀서를 수소문해가며 노래를 구해오고,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가며 만들어진 피 같은 앨범이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매달려서 제작된 앨범이었으며 윗선을 설득하고 설득하여 세상에 나온 앨범이었다.

차라리 설렁설렁 했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도 않았을 거다. 

데뷔 날짜가 정해졌을 때 잠까지 줄여가며 연습하던 멤버들의 모습이 유하준의 눈앞에 일렁였다. 

위이잉─!

어둠이 내리깔린 방 안에 희미한 빛이 스며든 건 그때였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이 쉼 없이 진동하며 유하준의 정신을 붙잡았다.

[서예은]

레아의 막내로부터 온 전화. 잠시 망설이던 유하준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지금 어디야. 

"집인데 왜."

얘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한 거지. 의문을 품기 무섭게 서예은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 진짜 집 맞지? 어디 이상한데 가 있는 거 아니지? 

“무슨 일 있어?"

- 아니 그냥······ 아까 보니까 많이 힘들어 보여서. 그 실장이 했던 얘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인생사 새옹지마.

과연 그 말을 지금 상황에서 쓸 수 있을까.

정말 레아에게 남은 미래가 있기는 한 건가?

한참 말이 없던 유하준이 죄책감을 토해내듯 읊조렸다.  

“미안해. 내가 무능해서. 너희같이 재능 넘치는 애들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이렇게 된 게 정말 미안해.”

- 아 좀. 자꾸 그러면 나 화낸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한 거 내가 제일 잘 알아. 매일 밤 새가면서 고생했잖아. 주말까지 반납하고 회사에 붙어있어서 회사 지박령이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였다고.

“······.”

푹 가라앉은 서예은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 그런 사람이 웬일로 정시 퇴근을 하나, 걱정도 되고 해서 전화했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 그럼 다행이고. 우리 내일 음방 스케줄 있는 거 알지?

유하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알지. 내일 시간 맞춰서 숙소로 나갈게.”

- 응,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어.

“그래, 너도.”

다시금 찾아온 적막.

자리에서 일어난 유하준 제 뺨을 짝짝 내리쳤다. 

아무렴 자신이 어떻게 입사한 G&Y인데, 뭐가 됐든 끝까지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야만 했다.

“포기하지 말자.”

혼잣말을 중얼거린 유하준이 식탁 위 액자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너무나도 해맑게 웃고 있는 소녀. 덩달아 씁쓸하게 미소 지은 유하준이 비밀리에 숨겨진 방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형광등이 내리깔린 방의 사면에는 투명한 보드가 배치되어 있었고, 그 벽에는 각종 뉴스 기사를 더불어 다양한 인물의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손이 가장 끄트머리에 배치된 기사 하나를 집어 들었다.

【투데이 뉴스】

프리넨스 멤버 유지안,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

금일 21시, 프리넨스 멤버 유지안이 약물 급성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 갔으나 끝내 사망하여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유지안은 오랜 시간 정신 및 행동장애를 앓아왔으며 약물 및 기타 정신활성 물질에 의존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23시 인터뷰를 통해 “유지안의 사인이 약물 과다복용인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유지안이 복용한 약물은 벤조다이아제핀(Benzodiazepine)으로 확인됐다”라고 보도했다.

유하준이 이제는 달달 외울 것만 같은 기사를 다시 보드에 고정했다. 

프리넨스 유지안. 

그건 다름 아닌 유하준의 친누나였다.

*

유지안.

그녀는 천상 연예인이라는 수식언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14살의 나이에 길거리에서 캐스팅을 당할 정도로 예뻤고, 3년의 연습 기간을 거쳐 걸그룹으로 데뷔할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다.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이 생긴다고 하던가.

그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유지안과 유하준은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설상가상으로 유지안은 첫 데뷔를 처참하게 말아먹었다.

이유야 뻔했다.

컨셉도 이상했고, 노래도 형편없었다. 의상이며 메이크업이며 뭐 하나 제대로 돼 있는 게 없었다.

괜스레 감정에 복받쳐 오른 유하준이 노트북에 저장해둔 라이브캠을 틀었다.

쓰레기 같은 노래와 안무임에도 최선을 다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함성 하나 없는 무대에서조차 단 한 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던 사람. 그런 사람이 어쩌다 자살을 선택한 걸까.

‘하준아, 누나가 너무 힘들어.’

그 시절의 유하준은 집에 올 때마다 소리죽여 울던 유지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연예인을 포기하지 그러냐고 되려 짜증을 부렸다.

팬도 한 줌뿐인 삼류 걸그룹 멤버가 투자자들을 은밀히 만나 성 상납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땐, 부끄럽고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어디가서 내 누나라고 하지 마. 창피하니까 차라리 그냥 죽어버려.’

유하준은 평생 연예인이란 꿈 하나만 보고 달려온 사람한테 그딴 소리를 지껄였다.

죽어버리라고.

결국 유지안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고, 그 사건은 유하준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로 다가왔다.

하나 남은 가족을 자기 손으로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에 몇 날 며칠을 폐인처럼 살았는지.

‘유지안씨의 유품입니다.’

그때 찾아온 게 형사라는 사람이었다.

형사가 건네준 다이어리에는 그간 유지안이 겪었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3월 12일]

오늘은 처음으로 멤버 애들하고 만난 날!

아무도 나한테 말은 안 걸었지만, 앞으로 차차 나아지겠지?

[3월 15일]

이상하네. 애들이 다 날 안 좋아하는 거 같아. 왜 나만 겉도는 느낌이 들까.

[6월 21일]

엄마, 아빠. 보고 싶어.

하늘에서 나 지켜봐 줄 거지?

[11월 30일]

엄마가 선물해준 개인 텀블러에 썩은 우유가 얼려져 있었어. 누가 했냐고 소리 질렀는데 나만 미친년 취급받더라.

[12월 3일]

숙소 들어가는 게 무서워. 차라리 휴게실 바닥에서 잠을 자는 게 나으려나? 회사에도 샤워실 따로 있던데, 씻는 건 거기서 해야지.

[12월 6일]

왜 난 항상 이럴까?

하필이면 공연 전날 호흡 곤란으로 쓰러져서 팀한테 민폐만 끼쳤어. 병원 신세를 지긴 했지만 매 순간 성실하게 활동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소속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

[12월 7일]

몸이 아픈데 공연을 서야 한대. 작은 안무 실수를 했어.  우리 그룹이 잘 안된 게 나 때문이래. 

내가 되지도 않는 비쥬얼 센터를 해서 팀을 말아 먹었대.

정말 그런가···?

[12월 15일]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어쩌면 난 이 사람들과 같이 있지만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혼자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그래서일까?

[12월 18일]

오늘 대표가 투자금 회수 명목으로 날 술자리에 끌고 갔어. 이렇게만 하면 팀이 뜰 수 있다고 해서. 분명 술만 따르면 된다고 해서 갔는데, 아니었어. 자기랑 같이 자자고 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쳐 나왔어. 

계속 문자가 와. 다시 안 돌아오면 소문을 퍼트려서라도 나락으로 보낼 거라고. 너 하나 때문에 멤버들 인생까지 다 종 치기 싫으면 처신 잘하라고.

근데,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

[12월 20일]

동생이 내가 투자자들하고 만난 걸 알게 됐어.

내가 제일 힘든 건 내 소중한 사람이 내가 마냥 웃고 있는 동안에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야. 그런데 이제 정말 마음 기댈 곳이 하나도 없어져 버린 거야.

먼저 떠난 엄마 아빠가 부러워. 이제 그만 둘을 만날때가 된 것 같아.

“······.”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넘긴 유하준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소속사나 멤버들이나 하나같이 다 빌어먹을 개새끼들이었다.

비쥬얼센터로 데뷔한 유지안은 같은 걸그룹 내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고, 하필이면 멤버 중 한 명이 엔터테인먼트 이사의 딸이었다.

그 인간만도 못한 녀석이 다른 멤버들을 선동해 유지안을 집중적으로 괴롭힌 것이다.

결국 더러운 소문까지 퍼진 유지안은, 하나 남은 가족에게까지 버림받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유하준은 안간힘을 썼다.

소속사 앞에서 일인시위도 해봤고, 온갖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렸다.

심지어 PD들을 찾아가 호소했지만 결국 되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주작이니 정신병이니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유지안은 서서히 잊혀갔다.

그로부터 1년.

[유지선, 솔로 데뷔!]

[김다연, 브라운관에서 신인 연기 선보이나?]

어이가 없었다.

왕따 주동자인 작자들이 죽음을 감성팔이로 포장해 승승장구한다고?

이 천하의 쌍년들은 예능, 가수, 심지어 배우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고, 전 소속사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G&Y와 합병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순 없던 유하준은 성을 바꿔 신분 세탁을 했다. 3대 매니지로 불리는 G&Y에서 로드부터 시작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루 두세 시간씩 자는 건 기본이었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에 출근했다. 

살인자들의 추악한 면면을 까발리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할 만큼의 공신력을 키우기 위해. 또 회사 내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지만 결국 5년동안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 했다. 

"결국 쫄딱 망한 걸그룹의 매니저라는 타이틀만 남아버렸구나."

띠리링!

허탈하게 읊조리던 유하준의 정신을 붙잡은 건 다름 아닌 도어벨 소리였다. 비틀비틀 걸어간 유하준이 현관문을 열었고,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하준아, 누나야.”

초등학생쯤 되보이는 아이가 그리 얘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지안이 누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