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은 소설들 #162(문피아, 노벨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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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런만 연기한다 (문피아)
https://novel.munpia.com/325535

현대배경 배우물입니다.

드라마 연출 스태프로 일하는 누나를 도와 짐꾼겸 운전수로 방송국을 방문한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방송국으로 가던 도중 혜성이 떨어지게 되고
그 순간 주인공은 이세계에서 3년 동안 전쟁에 참여한 병사의 기억을 얻게 됩니다.

방금까지 3년간 전장에서 싸워온 병사로서의 정체성이 너무나 뚜렷해서 오히려 한국에서 생활하던 기억을 꿈으로 여길 정도이죠.
가까스로 3년 전의 기억을 끌어내어 지금 같이 자동차에 타고 있는 누나의 이름이 뭐였는지, 현재 무슨 상황인지를 떠올리게 된 주인공입니다.

그 후 누나와 함께 방송국에 도착했지만,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노리는 적군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리게 되죠.


반면 방송국에서는 오늘 공개 오디션이 있는 날이었고, 마침 이번 작품에 어울리는 조연 배우를 찾지 못해 골치아파하던 PD가 주인공과 마주칩니다.
그 PD와 함께 걸어가고 있던 조연출이 주인공과 실수로 부딪칠 뻔하고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그 조연출을 자신을 위협하는 적으로 인식해서 반사적으로 제압하게 되죠.
그 장면을 본 PD는 자신이 생각하던 배역의 이미지와 딱 맞는 인재를 찾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조연출을 제압했던 주인공도 마침 오늘이 오디션이 있는 날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오디션 연기 연습을 하다가 과하게 몰입해서 그만 실수를 저질렀다며 사과합니다.

사실 주인공은 단순히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핑계거리로 오디션 이야기를 꺼낸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오디션에 참가할 생각은 없었죠.
그래서 주인공은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은채 그냥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번 배역에 딱 맞는 배우를 찾았다며 작가에게 호언장담을 했던 PD는 오디션 회장에서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만나지 못하게 되죠.


그 후 시간이 흘러 다시 누나를 돕기 위해 방송국을 방문한 주인공이 PD와 우연히 마주치게 됩니다.
사실 주인공이 오디션 참가자가 아니라 연출부 막내를 돕기 위해서 방송국에 왔던 남동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PD는 주인공을 캐스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냥 가버리고, PD는 주인공의 누나를 설득하려고 하지만 PD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길래 중요한 배역인줄 알았더니 사실 1화에 잠깐 등장했다가 죽는 등장인물로 캐스팅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누나는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주인공에게 오디션을 보지 말라고 합니다.
스토리상 원작 주인공을 각성시키기 위해 억울함을 토로하다가 자살하는 등장인물이라 별로 비중도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후 주인공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PD에게 전화가 걸려와서는 면접비겸 차비로 200만원을 줄테니 일일 알바한다고 생각하고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합니다.
거절하기에는 액수가 컸기에 결국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주인공인데 마침 그 배역이 어떤 병사였는데 3년 동안 전장에 있었던 주인공의 경험과 맞물려서 주인공은 대본에 맞춰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떠올려 재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 한 명을 위해 준비된 이 오디션에서 주인공의 연기를 보게 된 작가는 대본을 수정해서 주인공의 비중을 대폭 늘리게 됩니다.
1화짜리 단역이 아니라 거의 주연급 캐릭터가 되는 것이죠.



그 후에는 평범한 천재 배우물과 별다를바가 없습니다.
촬영장에서 주인공의 연기에 감탄하는 주변사람들의 반응,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의 반응
그리고 주인공의 연기에 휩쓸려 상대 배우들도 자신도 모르게 연기력이 상승한다는 전형적인 주인공 띄워주기 배우물 클리셰를 따라갑니다.
다만 이 부분이 꽤나 재미있기 때문에 초반을 참고 넘기면 볼만해집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많은 소설입니다.
예를 들어 오디션 한번 보러 오라고 200만원을 차비로 주겠다며 PD가 설득하는 장면은 개연성을 얻기 위해 개연성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애매한 액수로는 주인공도 독자도 납득하지 않을테니 200만원은 싫다는 주인공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 확실한 방법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1화짜리 단역 오디션을 보러 오라면서 연기 경력도 없는 일반인에게 200만원을 준다고 한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죠.


그 후에도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해 여러모로 무리수가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1화가 방영된 직후 그날 바로 시청률이 높게 나왔다며 PD가 주인공에게 조촐하게 회식이라도 하자며 불러냅니다.
그런데 식당에 도착한 주인공을 사람들이 알아보고는 수군거리다가 여러명이 사인을 받아가게 되죠.
첫 방송이 끝난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알아본다며 PD는 주인공에게 이후 입소문을 타고 더 유명해지면
이렇게 편하게 외부에서 밥먹기도 힘들어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6화가 방영된 후 주인공이 입은 옷이 PPL로 협찬 받은 것이었는데
7화가 방영되기도 전에 작가에게 이미 이번 PPL로 인해 매출이 평소보다 5배 이상 늘었다는 소식이 흘러갑니다.
일주일에 1화씩 방영된다고 감안하더라도 저렇게 짧은 기간 안에 매출을 집계해서 작가에게 알려준다?
작품이 방영된 이후 주인공이 화제가 되는 것을 보고 주인공을 콕 찝어 PPL을 넣은 만큼 해당 제품이 등장한 6화가 방영된 이후 매출을 주시하고 있었을테니 요일별 매출을 바탕으로 기존보다 일매출이 높게 나왔다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기는 하죠.
어디까지나 저런 묘사가 나온 이유는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해서니까요.


초반에 주인공이 처음 출연 계약을 맺는 장면도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죠.
PD가 주인공을 좋게 봐줬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인 조연배우보다 훨씬 높은 출연료를 제시합니다.
먼저 주인공이 출연 계약을 할 때는 아직 대본상 주인공의 비중이 그렇게 높지 않은 상태라서 1화 마지막에 자살한채 발견될 예정이었습니다.

이 때는 아직 작가가 수정한 대본을 PD에게 보여주지 않은 상태였는데 PD는 회당 출연료 90만원, 총 출연료 1080만원을 지급할 것이라고 하죠.
12부작 드라마인데 이후 회상씬으로 가끔 나오기는 할테지만 1화만에 죽는 등장인물로 계약을 합니다.
촬영기간은 빠르면 이틀, 지연되더라도 일주일 이내에 끝날 것이라고 하죠.

나중에 수정된 대본에서는 주인공의 비중이 굉장히 높아지면서 거의 주연급으로 등장합니다.
그것도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먼저 속이라는 말처럼 다른 배우나 스태프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은채 작가와 PD 등 주요인물들만 알고 있습니다.
수정되지 않은 장면은 일정대로 촬영했지만, 주인공의 비중이 커진 수정된 부분을 촬영할 때는 스토리가 미리 유출되면 안된다며
나중에 촬영 당일이 되어서 현장에 도착한 배우들에게 수정된 대본을 주며 촬영을 시킵니다.

1화당 방영시간은 정해져있는데 주인공의 출연비중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만큼 다른 배우들의 등장시간에 영향을 주게 되죠.
중간에 다른 배우가 해외 CF 촬영 때문에 출국해야 한다며 촬영일정을 문의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대본이 수정되며 주인공이 처음 계약할 당시와는 촬영 스케쥴이 달라진 것에 대한 계약상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또한 스토리가 바뀌며 원작 주연들의 캐릭터성마저 영향을 받게 되는데 1화 촬영을 모두 마친 시점에서도 아직 당사자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냥 미리 받은 대본에 나온 캐릭터 이미지로 그대로 가는 줄 알고 있죠.

유명 배우들은 자기 커리어 관리를 위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미지도 감안해서 작품에 출연할지를 고른다고 하죠.
이 소설에 나오는 PD와 작가는 굉장한 유명인이고 둘이 같이한 작품은 항상 시청률 1위였다고 합니다.
특히 이 작가는 중간에 대본을 수정해서 완전히 스토리를 바꾸는 것으로 원래부터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PD와 작가의 힘이 굉장한데다 애초에 이 작가가 중간에 대본을 크게 수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보니
다른 배우들은 불만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오묘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연기를 하는 장면은 확실히 몰입해서 읽게 되더군요.

시간이나 금액 등 세세하게 수치가 묘사된 부분은 크게 신경쓰지 말고 그냥 대충 뇌를 비우고 흘려넘기고
주인공이 연기를 하는 장면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 등 감성적인 부분에 집중하면 이 소설은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사실 댓글을 보면 초반에 주인공의 PTSD로 태클을 거는 사람이 많던데
저는 그 상황에서 카메라에 담기는 장면을 생각하는 PD가 더 이상해보이더군요.
개인적으로 차비 200만원에서 하차할까 고민했는데 그 부분을 참고 넘긴 다음부터는 최신화까지 쭉 읽었습니다.
여러모로 신경쓰이는 요소들은 많았지만 일단 주인공이 연기하는 장면은 확실히 재미있었으니까요.



2. 홈즈 양, 교수님은 악당이 아니에요 (노벨피아)
https://novelpia.com/novel/121478

퓨전판타지 피카레스크 추리물입니다.

셜록 홈즈는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한 추리소설이죠.
주인공은 현대인이었는데 마법과 증기기관이 있는 판타지 버전 19세기 영국에서 환생합니다.

21살이 된 주인공 제임스 모리아티는 옥스퍼드 대학을 조기졸업하고는 홈즈 씨네 둘째 아들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홈즈 씨네 8살짜리 막내 딸의 이름은 셜록 홈즈이죠.

처음에는 자신이 셜록 홈즈에 나오는 그 모리아티 교수로 환생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세계에는 실제로 마법사와 마녀가 있고, 늑대인간이나 환생자도 존재하는 세상이었으니까요.
다만 그 환생자들은 자신이 과거에 살았던 인물이었다고 말하지, 자신처럼 미래에서 살다가 과거로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앞에 나타난 셜록 홈즈와 마주치고는 자신이 셜록 홈즈에 나오는 모리아티 교수라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지루함을 타파하기 위해 변덕을 부려 일시적으로 가정교사로 일하기로 했지만, 1년 후 옥스퍼드로 돌아가 교수가 될 예정이었으니까요.


주인공을 처음 본 말괄량이 아가씨 셜록은 대뜸 주인공에게 정체를 숨긴 악당이 아니냐며 왜 이곳을 찾아왔냐고 추궁합니다.
사실 주인공은 군인으로 일하는 형이 물려준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깨에 장교 견장을 부착했던 흔적이 남아있고
일반인과 달리 군인이 입은 것처럼 옷이 각졌다는 것을 토대로 주인공이 사실은 대학생으로 위장한 퇴역군인이라고 추리한 것이죠.

지루함을 싫어하는 두 천재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됩니다.
주인공은 원래 홈즈 씨네 둘째 아들의 가정교사로 왔지만, 막내딸도 영특하다며 자신이 가르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8살짜리 아가씨 셜록 홈즈와 21살의 모리아티 교수의 수업이 시작되죠.


주인공도 셜록 홈즈도 둘 다 천재라서 일반적인 교과과목은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셜록 홈즈가 혼자 자습해도 쉽게 익힐 내용이니까요.
대신 주인공은 셜록 홈즈의 직관력을 길러주기로 하고 각종 수수께끼를 내며 풀게 만듭니다.

가상의 살인사건 현장에서 탐정 셜록이 경찰들이 놓친 단서를 토대로 범인을 찾아내도록 하기도 하고
수학에 담겨있는 여러가지 원리들을 설명해주기도 하죠.


그렇게 범죄와 얽힌 수수께끼를 만들어내며 즐겁게 셜록 홈즈와 놀아주던 주인공이지만
1년 후에는 옥스퍼드로 돌아가 지루한 일상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깨닫는 것이죠.
자신은 창작물 속 모리아티 교수가 아니고,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지만
자신은 범죄와 얽힌 수수께끼를 만들어내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요.


빌런물이나 다크히어로물은 상당히 흔한 편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설들은 대체로 주인공이 악당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사연이 있기 때문에 빌런이 되었으며 보통 정의와 선을 추구합니다.

반면 피카레스크물은 주인공이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악당이 됩니다.
이 소설이 빌런이 아니라 피카레스크 태그를 달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소설은 둘 다 괜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