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에 입학 했을 때는 한창 삐삐라 불리던 무선호출기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때 였습니다.
휴대폰은 진짜 돈 많은 사람들이나 가지고 다니던 사치품 이었죠.
모임 같은 것은 미리 약속을 잡거나,
혹은 대자보 같은 것으로 알리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 이었죠.
그런데 당시 학교 앞에는 조금 특이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알림판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누구나 거기에 원하는 내용을 적거나 메모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정문 근처에 있던 서점 한 곳의 외부 벽에는 알림판 벽보가 붙어 있었고,
그 건너편에 있던 커피숍(당시에는 카페 보다는 커피숍이라 불렀었죠)에는 코르크판으로 된 큰 메모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학생들은 수업을 끝내고 집에 갈 때는 꼭 그 앞에서 자기가 아는 모임이 있나 없나 확인하는 것이 일상일 정도 였죠.
알림판에는 그 날 학교 앞에서 있는 거의 모든 술자리가 다 적혀 있었습니다.
굳이 모임이 없더라도 술 마시고 싶으면 누구라도 메모를 남기면 되었습니다.
무슨과 몇 학번, 누구누구 어디서 몇 시 부터 술 마신다라고 쓰면,
보고 아는 사람이라면 가서 마시고는 했었죠.
1차가 끝나면 그 메모에 X표시를 하고 바로 옆에 2차 자리를 적어 놓고 뭐 그랬었습니다.
그 덕분에 진짜 거의 매일 술을 마셨던 것 같네요.
거의 매일 알림판에는 아는 사람들의 술자리가 있었거든요.
처음에 한두명으로 시작한 술자리가 끝날 때 즈음 되면 수십명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죠.
짖궃은 사람들은 미팅도 거기에 적어 놔서
훼방꾼들이 미팅을 훼방놓게도 했었습니다.
너무나 편리하고 추억이 많았던 알림판은
군대를 다녀오고 휴대폰이 대중화 되면서 차츰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몇 년 전에 학교 앞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아직 서점 앞에 알림판은 크기가 8절지 보다 약간 큰 크기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붙어 있고 또 몇 개의 술모임이 적혀 있기는 하더군요.
오늘 휴대폰 단톡방의 공지와 메시지들을 보다가 문득 몇 년 동안 잊고 지내던 알림판의 추억이 떠올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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