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골퍼들이 낡은 클럽을 놓지 못하는 이유 [임정우의 스리 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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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출시된 구형 드라이버로 KLPGA 투어 최강자가 된 박민지. [사진 제공=KLPGA] 프로 골퍼들은 최신 기술이 집약된 신제품이 나와도 무조건 바꾸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이 사용하던 기존 제품보다 편하거나 좋다고 느껴지지 않아서다. 특정 용품사와 계약을 맺지 않는 용품 자유 계약 선수들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우승 경쟁을 펼치는 경우 1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상금이 수억원이 넘게 달라지는 만큼 본인이 원하는 골프채와 공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많다.

지난해와 2021년에 각각 6승씩을 차지하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간판 선수가 된 박민지가 구형 제품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선수다. 박민지는 KLPGA 투어에서 거둔 통산 16승을 모두 2017년 출시된 핑 G400 드라이버로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들은 구형 제품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특히 드라이버의 경우 비거리와 관용성이 눈에 띄게 향상된다. 최소 10야드 이상 더 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스윗 스폿이 아닌 주변에 공을 맞혀도 똑바로 멀리 날아간다.

그러나 박민지가 지난해까지 구형 제품을 사용한 이유는 편한 느낌을 최우선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골프채가 아무리 좋아도 어드레스 때 시각적으로 불편함이 느껴지면 선수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사용하는 골프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박민지처럼 구형 제품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많다.

골프계 한 관계자는 “구형 골프채를 캐디백에 넣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신제품이 좋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골프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 만큼 쉽게 교체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골프채에 예민한 선수들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모델이 나오면 똑같은 스펙으로 예비용 골프채를 만든다. 출시된지 오래돼 단종된 골프채의 경우 중고 사이트와 중고 골프채 매장을 통해 구매할 정도로 구형 모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구형 드라이버를 사용해 KPGA 코리안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던 이재경. [사진 제공=KPGA] 한국 남자골프의 에이스인 임성재도 신제품이 아닌 2020년 출시된 타이틀리스트 TSi2 드라이버를 사용하고 있다. 이 드라이버 역시 곧바로 바꾼 게 아니다. 임성재는 2021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지금의 드라이버로 교체했다. 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안병훈과 2021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자 이재경도 2018년 출시된 타이틀리스트 TS 드라이버를 지난해까지 사용했다.

이 선수들이 구형 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방향성 때문이다. 최근에 출시된 드라이버들이 스핀량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 개발된 만큼 구형 제품보다 거리는 더 나가지만 공이 휘지 않는다. 이재경은 “똑바로 날아가다가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지는 페이드 샷을 구사하는 데 구형 제품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며 “10야드 더 나가는 것보다 페어웨이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나와 비슷한 같은 이유로 구형 제품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고 골프채 매장에서 구매한 제품으로 대박을 낸 코리안투어 선수들도 있다. 맹동섭과 조민규다. 2017년 미국의 한 중고 골프채 매장에서 2000년 출시된 오딧세이 화이트핫 투볼 퍼터를 15달러에 구매한 맹동섭은 이 퍼터를 사용해 2018년 KB금융 리브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GS칼텍스 매경오픈 준우승자인 조민규는 일본 중고 골프채 매장에서 산 8000엔짜리 중고 퍼터로 쏠쏠한 효과를 봤다.

짐 퓨릭은 중고 골프채 매장에서 구매한 퍼터로 엄청난 수익율을 낸 PGA 투어 선수다. 퓨릭은 2010년 9월 PGA 투어 도이체방크 챔피언십을 앞두고 중고 골프채 매장에서 구매한 예스 소피아 퍼터로 투어챔피언십과 페덱스컵 우승을 일궈냈다. 중고 퍼터의 가격은 39달러에 불과하지만 수익률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부러워할 정도다. 당시 퓨릭은 페덱스컵 정상에 오르며 보너스로만 1000만달러를 받았다.

계약 선수들이 구형 모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용품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대부분의 용품사들은 선수들이 사전에 양해를 구하면 구형 모델 사용을 막지 않는다고 밝혔다. 골프 브랜드 한 관계자는 “클럽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선수의 의사다. 선수들이 경기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구형 모델 사용을 막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사제공  매일경제

임정우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