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끔찍하게도 지저분한 장면이지만 객석에는 웃음을 참지 못한 관객이 많아 보인다. 이 영화 제작사인 싸이더스FNH 최미숙 팀장은 “그 장면을 본 객석에선 온갖 종류의 웃음소리가 다 나온다”며 “지저분하지만 웃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라는 데 관객의 평이 일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토사물, 변, 정액 등을 소재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을 화장실 유머라고 한다. 과거엔 일부 관객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화장실 유머를 사용하는 데 조심스러워하는 영화인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죽어도 해피엔딩
패럴리 형제 감독의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의 인기는 상업영화에서 화장실 유머를 해금하는 계기였다. 제작비 2300만달러를 들인 이 영화는 미국 내에서만 1억7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한 순박한 남자가 고교시절 첫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의 유머는 가관이다. 정액을 젤인줄 알고 머리에 바르는가 하면, 여자의 구두를 탐하는 변태가 등장한다. 고교 졸업 파티에 참석하기 직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 뒤 황급히 지퍼를 올리다가 성기가 지퍼에 낀 초반부 장면은 압권이다. 이
이후 화장실 유머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영화가 잇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10대 후반 청소년이 성에 대해 가질 법한 호기심을 그린 ‘아메리칸 파이’, 재능 많은 코미디언 마이크 마이어스가 영국 첩보영화를 패러디한 ‘오스틴 파워스’ 시리즈를 비롯해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까지 화장실 유머의 공세는 거침없었다. 최근에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가 큰 인기를 얻었다. 영화 속에서 문명의 오지라 설정된 카자흐스탄에서 온 보랏은 화장실 물에 세수를 하는가 하면, 근친상간에 대한 농담을 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한국에서도 화장실 유머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윤제균 감독의 ‘색즉시공’(2002)이 대표적이다. 대학 차력부와 에어로빅부를 배경으로 성과 연애로 얽힌 대학생의 일상을 그렸다. ‘색즉시공’에는 입에 토사물이 든 채로 키스를 하거나 정액으로 만든 계란 프라이를 모르고 먹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는 18세 관람가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4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화장실 유머 영화의 최근 사례인 ‘죽어도 해피엔딩’은 프랑스 영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의 리메이크 작이다. 그러나 원작에는 화장실 유머 코드가 없다. 한국 관객이 화장실 유머에 관대해졌다는 분석 때문에 개작이 가능했다. 심의 기준도 완화된 편이다. 역시 싸이더스FNH에서 제작했고 황당한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달콤, 살벌한 연인’(2006)이 18세 관람가를 받은 데 비해, 4명이 죽어나가는 ‘죽어도 해피엔딩’은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화장실 유머 영화에 윤리적 잣대를 가져다 대면 당연히 불편하지만, 사람의 내면엔 검열되지 않은 웃음이 있다”며 “사적 농담 코드를 사용하는 코미디 영화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에 대한 농담을 서슴없이 하는 애덤 샌들러, 벤 스틸러 등의 영화를 예로 들며 “오버하지 않는 캐릭터 연기를 하는 한에서는 화장실 유머 영화도 완성도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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