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절반이 사는 아파트, 기본 구조를 읽다
[아파트 속 과학] 라멘구조 vs 벽식구조
한국인 절반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는 2000년 전체의 36.6%에 불과했는데 해마다 늘어나 2018년 절반을 돌파하더니 2019년에는 51.1%까지 증가했다. 전체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기준 62.3%에 달했다.
우리나라의 연도별 거처 종류별 거주가구 변화(왼쪽)와 주택 종류 추이 ⓒ 통계청
주거와 편의시설 갖춘 5층 이상 공동주택
한국인 절반이 살고 있고 전체 주택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파트. 아파트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발달하면서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주거공간인 아파트는 어떻게 정의될까?
양희진 저자가 작성한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학위논문 ‘한국 아파트 단지화·대형화의 경제논리’를 살펴보면 아파트 개념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정의가 보인다. 아파트란 ‘한국의 대표적인 주택 유형으로, 주거시설과 생활편의시설이 하나의 대지에 복합 용도로 개발되어 대지지분을 공유하는 고층 고밀의 단지화된 공동주택’이라는 설명이다.
아파트로 인정받기 위한 법적 지위는 건축법 시행령에서 정한 것을 주택법과 건축법 등 관계 법률에서 가져다 쓰고 있다. 아파트는 공동주택 중 ‘주택으로 쓰는 층수가 5개 이상인 주택’이라는 정의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아파트와 똑같은 외관을 갖고 있는 4층짜리 공동주택이 있다고 가정할 때, 이 건물은 바닥면적에 따라 연립주택(660㎡ 초과)이나 다세대주택(660㎡ 이하)이 되는 것이지 결코 아파트는 될 수 없다.
아파트는 주거시설과 생활편의시설이 하나의 대지에 복합 용도로 개발되어 대지지분을 공유하는 고층 고밀의 단지화된 공동주택이다. ⓒ 김홍재
라멘구조에서 독자적인 벽식구조 탄생
관계 법률에서 정한 아파트가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인 5층 이상 공동주택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5층 이상 높이 층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건물이 안전성을 갖도록 적정한 간격을 두고 수직으로 튼튼한 ‘기둥’을 세워야 한다. 이후 기둥과 기둥 사이는 세로 방향으로 ‘보’를 연결한다.
기둥과 보가 연결된 건물의 기본 뼈대는 동네 놀이터에서 볼 수 정글짐 같은 형태를 상상하면 된다. 기둥은 그 위의 보를 지탱하고, 보는 다시 그 위에 깔릴 바닥의 무게를 지탱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이 탄탄하게 건물을 올리는 방식을 ‘라멘(Rahmen)구조(Beam & Column Structure)’라 부르는데,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초창기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지어졌다.
기둥과 보로 이뤄진 ‘라멘구조’(왼쪽)와 내력벽을 사용한 ‘벽식구조’. ⓒ LH
1970년대 서울의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아파트의 대량 건설이 시작되자 아파트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주거공간인 아파트는 일반 사무빌딩과 달리 세대를 구분하고 또 같은 세대 내에서도 방과 화장실 등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 역할을 하는 벽을 많이 세워야 한다. 보다 많이, 보다 빠르게, 보다 저렴히 아파트를 짓기 위해 고민하던 건설회사들은 평면 곳곳에 분포한 벽들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시초는 1979년 완공된 잠원동 대림아파트. 이 아파트는 기존 기둥과 기둥 사이의 칸막이벽들이 두께 20cm에 달하는 두터운 내력벽으로 둔갑돼 있다. 강력한 내력벽을 마치 벌집 칸막이처럼 곳곳에 설치한 결과 수평을 지지하는 보 없이 바닥을 바로 올릴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에 적용된 ‘벽식구조(Wall Column Structure)’의 탄생이다.
수요자 관점에서 다양하게 진화 전망
현재 우리나라에 건설되는 아파트 상당수는 여전히 벽식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벽식구조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성’이다. 라멘 구조로 아파트를 지으면 1층 높이가 3.2~3.3m 정도 되는데, 벽식 구조는 보가 필요 없기 때문에 1층 높이를 2.6~2.7m까지 낮출 수 있다. 층고가 낮아지면 공사비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공사기간도 절약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벽식구조가 만능인 것은 아니다. 벽식구조는 아파트 평면을 뒤덮고 있는 내력벽을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거주자가 평면을 변형할 수 없고 노후화됐을 때 건물 전체의 리모델링도 어렵다. 구조 측면에서 40층 이상 높이 올리기에도 부담이 크다. 또한 위층에서 발생한 소음이 내력벽을 타고 아래로 전달되기 때문에 층간 소음에서도 더 취약하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반면 라멘구조는 기둥만 건드리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공간 가변성이 뛰어나 거주자가 원하는 데로 평면 변형이 가능하다. 아울러 층 사이에 존재하는 보가 완충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벽식구조보다 층간 소음에 훨씬 더 강한 면모를 보인다.
아파트를 건립할 때 아직까지는 벽식구조가 우세를 차지하고 있지만 라멘구조도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초고층의 경우 타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구조 형식이 개발돼 적용되고 있다. 공급자 관점에서 풀었던 아파트 구조 문제를 수요자 관점에서 풀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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