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하우스

장애인의 재활에는 신체적, 정서적인 부분만큼이나 사회적 활동과 경제적인 부분 역시 중요하다. 이런 모든 부분은 서로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상호 간에 영향을 미쳐 장애인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사회 활동이 신체적인 재활과 정서적인 재활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일터탐방’은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거나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회사를 탐방한다. 이번 호에는 30년 기술력으로 서울시 다수의 구청에 쓰레기봉투를 공급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고용률 70%의 직업재활시설, 에덴하우스를 찾았다.

장애인들의 일터를 만들다

서울 도심을 벗어나 문산 방향으로 1시간 정도 달리다보면 파주가 나온다. 낮이라 자유로에 차가 적어 여유롭게 약속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봄을 맞아 중증장애인 고용률이 높은 ‘에덴하우스’를 찾았다. 차 한 대 지나가기도 버거운 동네 길목에 들어설 때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 했을 정도로 회사의 규모가 컸다. 입구에 가로대가 내려져 있어서 차를 멈추자 코로나 여파로 인해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면서 관리직원이 체온을 쟀다. 이름, 전화번호, 체온을 기록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에덴하우스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에덴하우스’와 ‘형원’은 에덴복지재단의 근로사업장이다. 에덴복지재단은 전 국가대표 유도 선수였던 정덕환 씨에 의해 시작됐다. 정덕환 씨는 선수 시절 1972년 몬트리올 올림픽을 준비하다가 경추 4번과 5번을 다쳐서 척수장애인이 됐다. 갓 27살에 4살짜리 아들을 둔 젊은 남성이 하루아침에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는 혹독한 재활을 거친 후 1983년, 장애인 재활의 의미조차 이해하는 사람이 없던 시대에 5명의 장애인과 함께 개봉동에 직업 시설을 만들었다. 초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작업장 직원이 80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작업장 주변에 민가들이 생겨나면서 공장 소음과 대형 차량의 출입에 대한 민원이 이어졌다. 결국 회사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됐고 파주가 목적지가 됐다.

옮기는 과정도 만만찮았다. 중증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니 지역민들의 반대가 거셌다. 길을 막아놓고 작업차량이 전혀 다니지 못하게 하는 등의방해를 뚫은 후에야 간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최고의 제품 만들고 자부심을 키우다

에덴하우스는 92년부터 쓰레기봉투를 제작하고 있다. 현재 거래하는 곳은 서울 25개 구청과 지방 10개 구청이다. 타기업과 동등하게 공개입찰 과정을 거쳐, 리터별 품목 중 선정된 제품을 생산∙납품하고 있다.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쓰레기봉투를 제작하면서 시설, 기술력, 노하우도 늘었다. 장애인이 만들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품질 걱정을 하지만 어떤 업체와도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예전에야 불쌍하니까 사준다는 생각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격과 품질에서 경쟁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에덴하우스의 제품은 구청을 통해 가정으로 공급된다.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품질이 좋지 않으면 구청에 민원이 접수된다. 이런 일이 누적되면 매년 반복되는 입찰 경쟁에서 사업을 따내기가 불가능하다. 홍성규 원장은 “에덴하우스는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에덴하우스에서 나오는 쓰레기봉투는 크게 6단계의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원단을 압출성형 하고 인쇄한 다음 접합 가공, 원단 받기, 절취, 포장 단계를 거친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테스트를 거쳐 품질을 확인한 후 납품하게 된다. 에덴하우스 제품이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작업 공정을 세분화했기 때문이다. 장애유형과 장애정도, 개인편차를 고려해서 맞는 일을 맡긴다. 에덴하우스에는 많은 중증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주로 발달 장애인이 많고 지체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있다. 압출 성형 과정은 비장애 전문기능직이 수행하고 장애인이 보조업무를 담당한다. 비닐 원단을 제조하는 과정인데 각 구에서 요청하는 색과 비닐의 탄력 정도가 매우 까다롭다. 소량의 색소 첨가로도 결과물이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소수의 숙련공만 일한다. 중증장애인만으로 구성된 공정 역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간혹 일손이 모자라 비장애인 직원이 도우러 갔다가 핀잔 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든 직원이 자신이 맡은 일에 전문가라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을 통해 장애인 삶의 질을 높이다

장애인이 자신의 근로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신체 기능도 향상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지는 것이 정서적인 부분이다. 자신이 한 분야에서 비장애인보다 능숙하게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존재감과 필요성을 느끼게되니 삶에 대한 만족도와 능률이 높아진다. 급여도 매우 중요하다. 에덴하우스는 초창기부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해 장애인 가정에 큰 보탬이 되어 왔다. 정당한 급여는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에너지와 시간을 확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최저시급도 되지 않는 비용을 주면서 장애인을 고용해주니 감사하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이제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렵다.

에덴하우스에 중증장애인이 취업하기 위한 조건을 묻자 별다른 진입장벽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개인의 신변처리가 가능하면 되고, 약 3개월 정도 적응훈련을 한 후 적응도 여부에 따라 취업을 결정한다고 한다. 에덴하우스는 현재 90명 정원에 89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이 중 77%가 중증장애인이다. 에덴복지재단의 다른 업체인 ‘형원’에서는 40여 명의 장애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전체 130여 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형원은 2009년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장으로 시작한 세제 회사이다. 주방세제와 세탁세제, 욕실용품을 생산하고 있 다. 만약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 화장실 에서 손을 닦은 적이 있다면 형원에서 만든물비누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 제품을 OEM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도 대형마트에 납품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용해 본 사람들은 품질에 만족하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다 보니 판매량이 적기 때문이다. 기업 납품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판매가 일정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최근 감염병으로 시장이 위축되면서 장애인 직원들의 급여 지급도 빠듯한 상황이라고 한다.

사회 속에 장애인의 자리를 마련하다

이제는 어엿한 중견기업이 된 에덴하우스지만 규모가 커진 만큼 다른 고민도 생겼다. 다수공급자계약제도(Multiple Award Schedule), 약칭 MAS라는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기존 최저가 1인 낙찰자 선정 방식으로는 다양성 부족과 품질 저하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다수의 공급자를 선정, 가격과 품질경쟁을 유도하는 법이다. 이 MAS 2단계경쟁제도에는 평가항목 중 신규고용률 평가 부분이 있다. 5인 기업에서야 1명만 신규고용해도 20%가 되지만, 100명 넘는 기업에서는 신규로 10명을 고용 해야 10%가 되는데, 매년 보직마다 신규 중증장애인을 충원하기는 매우 어렵다.

노동이 가능한 중증장애인을 발굴하는 일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납품처에 현실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해도 반영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소수점 단위로 당락이 결정되는데 비현실적인 평가 기준이 너무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다. 이것은 비단 에덴하우스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다수 장애인을 고용한 기업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해결책이 절실하다 에덴하우스는 그 이름처럼 직원들의 일터와 삶터로 더없이 좋은 곳이다. 중증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업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에덴하우스의 미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