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응급실에 입원하셨다

어머니가 응급실에 입원하셨다

아침 방송을 만들던 시절, 사건사고 촬영으로 밤새 12시간을 상주하며 비명소리, 욕지거리에, 뛰어다니는 소방관들, 절단된 손에서 피가 솟구치는 모습들을 봤던 그 곳이다

어머니는 어제부터 횡설수설하셨다. 하지만 난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말하기 좋아하던 아버지는 항상 성경 강해를 이유로 우리에게 맥락없이 하고 싶은 설교를 하셨고, 언젠가부터 어머니도 그랬거든. 조리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비롯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진 능력이니까. 무심하게 또 그러려니 했다.  

응급실 침대 맡에서 자리를 지킨다. 새벽 두시가 넘으면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고 음성이면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했다. 중환자실은 나도 경험한 적이 있지. 그래도 거긴 준중환자실이어서 보호자도 옆에 있을 수 있고 커튼 옆으로 다른 환자들도 있었다. 자면 안되는 수술 첫날 밤. 무통주사를 꽂고 피와 가래를 석션하며 지새웠던 그 밤, 내 옆에는 동생이 있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평온하다. 머리 안에 혈관에서 출혈이 있다는 CT 촬영 사진을 보고 쇼크를 먹었지만 적어도 고통은 없는 상태다.  

편집을 하고 있었다. 유튜브 편집. 나는 항상 내게 주어진 일들이 대단하지 않다고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선지 돌이켜보면 항상 집중력이 떨어졌다. 몇몇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유튜브 편집을 하느라고 어머니 검사를 미뤘다. 죽을 뻔 했다. 두고두고 후회하다가 죽을 뻔 했다.  

평소에도 엄살이 심하셨다.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오히려 가족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걸 즐기셨지. 그런 일들이 잦아지고 시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양치기소년이 된 어머니가 어디가 좀 불편하시다고 해도 우리 가족은 점점 더 덤덤해졌다. 그랬던 어머니가 어제는 달랐다. 평소와 다르게 불안해했고 병원에 빨리 가서 검사를 받고 싶어하셨다. 횡설수설 말씀을 하실 때도 평소보다 조금 더 하고 싶은 얘기만 하신다고 여겼지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자식이 일이 급하다는 말에 어머니는 크게 토달지 않았다. 평소같으면 서운하다고 화를 냈을텐데 그러고보니 그러지를 않았다. 그나마 어제 동네 내과의사가 MRI 검사를 받아보라던 말이 신경이 쓰여서 편집 틈틈히 증상을 검색했지만 어머니와 같은 증상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하루를 더 미루려고 했다. 그러다 어떤 정보가 검색된 순간, 내일로 미루면 안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짐을 꾸려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검색된 결과 그대로 충격적이었다. 그대로 응급실로 뛰어야 했다. 응급실에서도 의사와 간호사가 뛰어들어왔다. 어머니가 직접 환자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 황급히 환복시키고 코와 손목과 귀에 필요한 장치를 달았다. 나는 알았다. 심박, 호흡, 혈압 등 신체 상태에 변화가 있을 경우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는 중환자에 대한 처치다. 뇌졸중이나 뇌출혈은 최초 이상 징후를 느꼈던 시간이 중요한 모양이다. 의사가 몇 번이고 정확한 징후 감지 시간을 물었지만 어머니는 제대로 답변을 못했고 시간을 유추해서 내가 답해야 했다. 어제 오전 10시에서 11시 경이라고 말했다. 일단 약물을 투여하면서 몇가지 검사를 더 하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답변이 온다.  

CT사진을 보며 당장 응급실로 가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 어머니도 그랬다고 했다. 약을 드시고 괜찮은 줄 알았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했다. 너희 어머님은 빨리 알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니까 괜찮을 거라고 한다. 순간 온 몸이 저릿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왈칵 올라왔다. 이 타이밍에 이런 전화를 할 수 있다니. 이 녀석은 난 놈임이 틀림없다. 애써 내리누르고 두번을 말했다. 고맙다. 고맙다  

동생이 뛰어왔다. 보호자는 한 명만 상주가 가능해서 교대하고 잠시 집에 와서 필요한 걸 챙겼다. 다시 3시간 후 쯤 교대했다. 동생에게 옛날 얘기를 횡설수설 하셨단다. 모처럼 잘 들어드렸다고 한다.

곧 내게도 대학에 진학하던 때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인물이나 대상을 그때그때 떠오르는 단어로 바꿔쓰시면서 의식의 흐름 그대로 풀어 놓으셨다. 한번도 못 들어본 장르다. 두서는 없지만 이야기엔 개성이 넘친다. 어머니는 대학 입시를 한달 남겨두고 미대에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한달동안 미술학원에서 한눈팔지 않고 그림만 그렸고 기적처럼 숙명여대 미대에 단번에 합격했다. 당시의 평균 실력이 지금만 못했다 하더라도 아마 전무후무한 사례일거다. 그런데 왜, 이런 인생의 절박한 타이밍에서 한 달 동안 미대입시 준비를 해서 합격했던 얘기가 떠올랐을까. 어쩌면 그 순간이 어머니 삶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던걸까. 어머니는 혹시 칭찬을 받고 싶었던 걸까. 50년 전의 무용담을 통해 어머니는 잠시 위안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일까.

면접교수를 의사로, 나를 동생으로, 그림 그리던 일을 교회 생활로 치환하며 당시의 얘기를 끝내 마치시고는 주무시겠다고 했다. 돌아누워 잠이 드셨다. 십분이나 지났을까. 신경이 쓰이셨는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걱정스런 눈으로 보신다. 나 참. 지금 누가 누굴 그런 안스러운 눈으로 보는건지. 잠도 못 자서 어쩌냐고 하신다. 똘망똘망하게 눈을 뜨고 답한다. “어머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간병인은 옆에서 정신차리고 있는 거에요”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나는 벌써 약해져 있다.  

곧 병원 스탭들이 나타났다. 코로나는 음성이고 중환자실로 이동한다. 순식간에 준비가 됐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중환자실로 간다. 가는 복도에서 또다른 이동 환자를 마주친다. 바짝 마른 중년 여성이 통증으로 괴이한 신음을 낸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쉽지 않은 공간이다.  

중환자실 앞에서 나의 출입이 통제된다. 갑작스런 이별에 나는 전쟁통에 헤어지는 가족처럼 못다한 말을 쏟아낼 수 밖에 없다. 스탭에게 물었다. ‘여기서 헤어지는거죠?’ 간호사는 뭐가 대단한 일이냐는 듯 ‘네 못 들어가십니다’ 라고 한다.   “어머니, 중환자실엔 보호자가 못 들어가요. 어머니, 내일 병실 이동하게 되면 제가 올거에요. 어머니 괜찮으니까 걱정말고 푹 쉬세요” 스탭들은 그러든지 말든지 침상을 끌고 막 가버린다. 이건 뭐 이산가족이나 강제 격리가 따로 없다. 결국 할 말을 다 못한 나는 또 의사한테 부탁한다. 괜찮을 거라고 내가 내일 다시 올거라고 잘 전해달라고, 꼭 부탁한다고.  

이럴 줄 몰랐다. 우린 언제나 이럴 줄 모르고 산다. ‘어영부영 살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와 같은 말이다.  

아무 말도 못하고 아버지를 보냈다. 아버지의 심장이 멈추고서야 아버지한테 숨을 쉬어보라고 소리쳤다. 아버지처럼 보낼 수는 없다. 아버지와의 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아니, 분명 나아지실 테고 잘 회복하실 거다.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나는 좋은 시간들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사랑해야 한다.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새들이 재잘거린다. 잘 수 있을까. 담배를 연거푸 태웠다. 다행히 업무 파트너들은 내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편집 프로그램을 연다. 이걸 하면서, 또 나는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