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랜드
오징어랜드오징어랜드팬더티비
유머 일일 인기게시물 30
인기
[역사]

광해군 실리 중립외교로 포장된 사르후 전투 결과

[댓글수 (10)]
rank
다섯젓가락
2026-07-03 () 23:08조회 : 1395추천 : 13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중초본]142권,

광해 11년 7월 8일 기축 1/3 기사 /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

원문

○己未七月初八日己丑體察副使張晩馳啓:

"被擄走回人, 各道都合一千四百餘人, 而至今不絶。

先是, 從弘立渡鴨江者, 精兵凡一萬三千餘人, 投降之後,

將士被厮殺殆盡, 軍卒皆部分于農民(以守之), 故逃還相繼。"

국역

체찰 부사 장만이 치계하기를,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쳐 돌아온 사람이

각도를 모두 합하면 1천 4백여 명인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앞서 강홍립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간

정예 병사가 1만 3천여 명이었는데,

투항한 후 장사(將士)는

거의 모두 죽음을 당하고

군졸은 모두 농민에게

무더기로 나누어 주어 〈지키게〉 하였으므로

계속 도망쳐 돌아왔다.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44면

***********************************

광해군 중립 실리 외교라는 것이 파병 병력 2/3가 죽고

나머지는 노비가 되고 그 중에서 또 청에 의해 죽고

도망친 것이 실리 중립 외교라

친일부역민족반역자들에 의해 포장됨.

광해군 실리외교 중립외교 주장하는 근거가

‘강홍립 밀지설’임.

광해군이 강홍립에게

"명나라 군대의 명령을 따르지 말고,

눈치를 보다가 후금에 투항하라"는

비밀 밀지(관형향배, 觀形向背)를 내려

조선군의 피해를 막았다는 설.

역사적 사실: 이 이야기는

광해군이 내린 것이 아니라,

후대 인조반정 세력(서인)이

광해군을 폐위하기 위해 지어낸

비난용 루머.

"광해군이 명나라를 배신하고

오랑캐와 내통해 군대를 항복시켰다"며

폐위의 명분으로 삼았던 죄목이,

현대에 와서 도리어

'실리 외교의 영웅적 증거'로 포장 된 것

광해군일기조차도 항복하라는

밀지를 교서했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그런데 저런 말이 왜 나왔을까

명나라 경략(經略)이 조선의 포수(총수)를

다른 부대로 징발하려고 하자,

광해군이 도원수 강홍립에게

명나라에 답장(呈文)을 보낼 때

외교적 핑계를 대어 포수를 빼앗기지 않도록

대처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을 조작질 한 것이다.

광해군일기[정초본]137권, 광해 11년 2월 3일 정사 2/2 기사

실록 내용중에

................................................................................................

"중국 장수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만 말고"

.....................................................................................................

이 내용이 청과 밀약 주장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전문에는

***************************************************

"중국 장수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만 말고

오직 패하지 않을 방도를 강구하는 데에 힘을 쓰라."

******************************************************

항복하라는 것이 아닌 승전을 말함.

원문

○下諭于都元帥姜弘立曰:

"當初渡遼軍一萬, 專以兩西精銳抄發,

團束敎練, 將卒相熟, 今難輕易換易也。

毋徒一從天將之言, 而唯以自立於不敗之地爲務。

經略所調炮手, 雖不得不送, 而呈文回答之際,

若曰: ‘我國軍兵, 雖曰滿萬, 成才炮手絶少,

今就其中, 抽出四百, 則東路之勢, 甚孤。

’ 云, 則經略或有不配他營。

還送我國之理矣。

今無一毫持難之色, 而快許入送, 卿之此擧, 恐誤思量。

如遇于承恩往來之便, 使備陳事情,

使之周旋於經略衙門, 俾無分營之患。"

毋徒一從天將之言, 而唯以自立於不敗之地爲務。

"명나라 장수(天將)의 말에만 무조건 따르지 말고,

오직 (조선군 스스로가) 패하지 않을 위치에

자립하는 것(안위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의 임무로 삼으라."

이렇게 사르후 전투가 망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광해군에게 있다 .

궁궐 공사로 병사들에게 줄 군량미도 제대로 안 보내고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이 굶으면서 싸우게 만든 광해군

그런 광해군을 아직도 찬양한다???

물론 임진왜란 때 광해군은 정말 좋은 세자이지만

왕이 된 이후 조선의 모든 사람들에게 비난 받을 짓만 했다.

단종과 정도전의 경우를 보자

단종은 원래 노산군이었다 그러다 숙종 때 단종으로 복권 되었다.

심지여

사육신도 숙종 때 명예회복 됨

김종서는 영조 때 명예회복 됨

정도전은 고종 때 명예회복 됨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본 식민지 된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

조선을 비난 하는 친일부역민족반역매국노들이 많은 데

조선은 후대 시간이 지나면

진짜 억울한 사람들 명예를 회복 시켜 준다는 것이다.

조선 왕조가 그냥 500년 간 것이 아니다.

그러나 광해군이나 연산군은 끝까지 복권이 안 되었다.

조선 시대 내내 폭군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현대에서 그렇게 광해군을 칭송하게 되었을까…

이나바 이와키치 <=== 요것 때문이다.

처음이죠…저 것 이름

여기도 저 것 가르침을 받들고 사는 것들 있더군

이나바 이와키치(稲葉岩吉, 1876~1940)는

일제강점기 당시 활동하며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일본의 관변·식민사학자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사편수회 수사관(修史官)으로 근무하며

식민사학의 핵심 논리인

'만선사관(滿鮮史觀)'과

'타율성론'을 정립하고 확산시킴

이나바 이와키치(稲葉岩吉, 1876~1940)는

1908~1914년 만철조사실에서 만주사 연구

1915~1922년 일본군 육군참모본부

육군대학에서 동양사 강의

1922~1937년 조선사 편수회 간사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정당성을 역사로 편수함)

저술사

<< 광해군 시대의 만선관계>>

핵심 내용

"명의 원병 요청을 거부하고

후금과 화친하려고 했던

광해군의 외교는

현실적이고 백성들에게 은혜로운 정책이다"

..............................................................................................

일본인 이나바 이와키치의 목적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 정당성을 위해

연구하고 허위 조작 노력했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과거 광해군 때

조선인들이 무시한 청나라에 패 했다

그러니 광해군을 본 받아서

중립 실리 외교로 일본을 받들어야 한다.

광해군을 몰아 낸 역사적 잘못을 기억하고

일본 제국과 협력해야 된다"

이렇게 식민사관을 세뇌시키고 지금도

세뇌되어 짖어 대는 강아지들이 많다.

“영화 드라마로 식민사관 배운자들이여 정신이나 차려라”

이나바 이와키치.jpg

출석체크 +1000P
댓글  10
프로필
rank
다섯젓가락
글쓴이
내가 언제가 한 번 이 글 쓰고 싶었음
프로필
rank
안녕하십니까
민비와 더불어서 광해군도 참 포장이 잘 된 인물중 하나죠 영화덕에 광해군의 가장 큰 문제가 대규모 궁궐공사임. GDP 비율로 보면 사대강 그 이상이었음. 현대판으로 바꾸면 625전쟁 끝나자마자 사대강사업 시작했다고 보면 됨. 임진왜란 끝나고 나라살림 챙길 생각은 안하고, 전쟁중 바닥에 떨어진 왕권을 키우겠다고 대규모 궁궐공사라니...
프로필
rank
역시환타지
@안녕하십니까 민비와 고종은 오히려 식민사관 때문에 악마화가 가장 성공한 사레입니다. 민비의 사치라며 수년에 한번씩 커뮤에 떠돌았던 사진들은 전부 출처를 알수없음.
프로필
rank
가이의호랭이
다른건 모르겠지만 사르후 전투의 패배에 광해군의 책임은 없음 보급은 명에서 책임지는게 당연한 거고, 전투에 동원된 4개부대 중 한부대의 일부였던 조선군이 어떻게 전투의 결과에 영향을 주겠음? 그냥, 명이 전쟁을 못해서 진 전투임
프로필
rank
다섯젓가락
글쓴이
@가이의호랭이 에초에 조선군 군량에 대해 조선군은 조선이 책임 진다고 했으면 좀 더 유연한 작전을 할 수 있었음 . 광해군이 궁궐 공사로 군랑미 다 쳐 먹어서 파병 조선군에 군량 조달을 못 하고 독자적인 작전권이 없었던 것임. 그래서 명군의 일방적 지시를 받다 보니 완전한 패배를 하게 된 것임. 만약 조선이 스스로 군량을 전담하여 수송선과 보급로를 구축할 능력이 있었다면, 명나라의 무리한 진격 명령을 거부하고 "우리 보급 속도에 맞추겠다"며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음 하지만 스스로 먹을 것을 책임지지 못하고 명나라의 보급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명나라 장수 유정의 무리한 속도전 독촉과 일방적인 행군 지시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음. 결국 굶주린 상태에서 적진 깊숙이 끌려 들어가 각개격파당하는 비극을 맞은 것임. 명군의 패배는 어쩔 수 없을 수 있느나 군량이 충분했다면 조선군 독자적으로 생존 청군과 협상으로 피해가 없었을 수 있다는 것임.
프로필
rank
가이의호랭이
@다섯젓가락 그 먼 거리에서 군량을 조선이 보급하는게 말이 됩니까? 보급하려면 몇 명이나 동원해야 할까요? 당연히 명에서 하는게 맞죠.
프로필
rank
다섯젓가락
글쓴이
@가이의호랭이 ㅋㅋㅋ 아고... 군대가 전투병으로만 구성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도대체 뇌 어디서 나오는 신호일까 《광해군일기》 기미년(1619년) 윤3월 12일 한문 원문: 姜弘立, 二日後上狀啓曰: "自昌城渡江之日, 軍兵各持十日之糧以行, 今已幾盡, 匱乏在 눈앞." 弘立以軍糧旣渴, 請於明遊擊喬一琦, 僅以小米十包·馬頭二包, 分給粮盡之右營。 내용:강홍립 창성을 떠날 때 군사들이 짊어지고 간 식량은 겨우 10일 치였습니다.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 영토로 진입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명나라 장수 교일기에게 구걸하다시피 하여 겨우 조 10포대와 말먹이 2포대를 얻어 우영 군사들에게 나누어 준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 일본군이 만들어 조작 질 한 광해군에 대해 변명을 더 해 보시요 그리고 조선군이 국경을 넘어 여진족 영토인 '우모채(牛毛寨)'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지참한 양식이 모두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후방에서 군량을 올려보내야 할 평안감사 박엽과 군량 공급 책임자(관향사 윤수겸)는 제때 수송을 감독하지 않고 강가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 姜弘立軍, 越牛毛嶺, 馳啓軍隊移動狀況及軍糧之不足等事。"…… 伐木開路, 日暮, 抵牛毛寨。 原有胡家三十餘戶, 已被燒爇, 其所埋置穀物, 都督兵掘出爲糧。 云此處去本寨一百五十里。自昌城渡江之日, 人各持十日糧出發, 今已殆盡, 糧絶之日, 迫在眼前。 臣以此意, 再三向都督懇言, 則都督云: ‘貴營兵, 留待糧運。 吾亦更留一日, 明日當與貴營兵同進。’張副摠、姚遊擊、喬遊擊、周都司、徐備禦、周備禦所領兵, 先進矣。 日暮糧不至, 故右營昨夕糧絶, 分給喬遊擊所送小米十包、馬頭二包。 禍在目前, 不知所爲矣。"【〈朴燁與尹守謙斷糧路, 故弘立等陷於大困。〉】 박엽은 광해군의 총애를 받는 핵심 인척이자 측근 평안감사 박엽은 광해군과 사촌동서 사이인 왕실의 핵심 외척이자 측근 광해군의 정비인 문성군부인 유씨(유자신의 딸)와 박엽의 아내가 사촌 자매간
프로필
rank
다섯젓가락
글쓴이
이나바 이와키치(稲葉岩吉, 1876~1940)는 1908~1914년 만철조사실에서 만주사 연구 1915~1922년 일본군 육군참모본부 육군대학에서 동양사 강의 1922~1937년 조선사 편수회 간사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정당성을 역사로 편수함) 저술사 << 광해군 시대의 만선관계>> 핵심 내용 "명의 원병 요청을 거부하고 후금과 화친하려고 했던 광해군의 외교는 현실적이고 백성들에게 은혜로운 정책이다" .............................................................................................. 일본인 이나바 이와키치의 목적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 정당성을 위해 연구하고 허위 조작 노력했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과거 광해군 때 조선인들이 무시한 청나라에 패 했다 그러니 광해군을 본 받아서 중립 실리 외교로 일본을 받들어야 한다. 광해군을 몰아 낸 역사적 잘못을 기억하고 일본 제국과 협력해야 된다" 이렇게 식민사관을 세뇌시키고 지금도 세뇌되어 짖어 대는 강아지들이 많다. ============================== 이 말이지 내 말이
프로필
rank
이토5천
광해군은 세자 시절 총명함을 잃은 암군임
프로필
rank
바람구름햇빛
조선은 500년동안 세종빼고 명군이 없나?
댓글을 작성하시려면 로그인해주세요.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