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랜드
오징어랜드오징어랜드팬더티비
유머 일일 인기게시물 30
[역사]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해적왕, 하이레딘

[댓글수 (3)]
rank
전설의왕게
2026-07-18 () 02:04조회 : 703추천 : 4

흔히 해적이라고 하면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유럽인들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유럽인들을 상대로 해적질을 벌였던 집단도 있었으니, 현재의 알제리와 튀니지와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바르바리 해적단이었습니다.

이 바르바리 해적단은 16세기에 들어 가장 활동이 왕성해졌는데, 그들을 이끈 장본인은 그리스에서 북아프리카로 이주했던 두 명의 형제인 오루크와 히지르였습니다.

Arolsen_Klebeband_01_465_4.jpg

Jeireddín_Barbarroja,_por_Agostino_Veneziano.jpg

당시 북아프리카는 스페인에서 쫓겨난 이슬람교 난민들이 넘쳐나서 혼란스러웠는데, 1512년 두 형제는 그런 북아프리카로 가서 난민들을 상대로 “너희들의 재산을 빼앗고 쫓아낸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기독교 신자들한테 복수하자!”고 선동을 했고, 분노에 차 있던 난민들은 두 형제의 말에 열광하며 그들을 지도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오루크와 히지르는 난민들과 함께 알제리의 해안가에 정착하여 대규모의 조선소와 배를 만들고는 해적질에 나섰습니다. 우선 튀니지와 알제리의 해안가에 배를 대고 숨어 있다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무역선이 다가오면 재빨리 배를 몰고 다가가 승객과 선원들을 제압하고 배와 그 안에 실린 물건들을 빼앗은 후, 알제리의 도시인 알제의 시장에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고 빼앗은 배는 개조하여 새로운 해적선으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또한 제압한 무역선의 승객과 선원들은 노예로 만들어 알제의 시장에 내다 팔거나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삼았습니다.

Captain_walter_croker_horror_stricken_at_algiers_1815.jpg

Marche_aux_esclaves_d_alger_gravure.jpg

해적 활동으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오루크와 히지르 형제는 더욱 대담한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오루크는 자신들의 해적질을 별로 반기지 않았던 알제의 술탄(이슬람교 국가 통치자의 칭호)을 목욕탕으로 유인해 목을 졸라 죽이고, 자신이 거느린 해적들을 동원해 알제의 왕족들도 죽인 다음 북아프리카의 중요한 도시인 틀렘센을 점령하고 자신이 알제의 통치권을 탈취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1518년 스페인 군대가 알제리 서부의 도시인 오란을 공격하는 전투에서 오루크가 전사하고 히지르는 간신히 목숨만 건져 달아났습니다.

위기를 겨우 모면한 히지르는 스페인의 적대국인 오스만 제국(터키)의 힘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셀림 1세에게 사신을 보내, 오스만 제국이 자신을 보호해 준다면 모든 영토를 오스만 제국의 속령으로 바치고 오스만 제국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BainbridgeTribute.jpg

Fathers_of_the_Redemption.jpg

셀림 1세는 히지르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히지르를 오스만 제국의 알제 총독으로 임명했고, 오스만 제국의 최정예 부대인 예니체리 병사 2천 명을 보내주었다. 아울러 그에게 정의와 은총이란 뜻의 칭호인 하이레딘까지 내려주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얻은 히지르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가 기독교 신자들을 상대로 이슬람교를 위한 성전, 즉 지하드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중동에서 수많은 추종자들이 알제와 튀니지로 몰려왔습니다. 그들 역시 히지르처럼 해적질을 벌여 한몫을 잡아보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1520년대 말이 되자 히지르는 셀림 1세가 보내준 2천 명의 예니체리 병사들을 제외하고도 4천 명의 지원병을 더 거느렸습니다. 그리고 알제와 튀니지에서 활동하면서 히지르를 따르는 해적 두목들은 4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그들은 노략질로 얻은 수익의 12%를 히지르에게 바치며, 그 대가로 히지르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1533년 히지르는 14척의 갤리선과 18명의 해적 두목들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을 방문하여 새로운 술탄인 쉴레이만 1세를 만나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 대가로 쉴레이만 1세는 히지르를 오스만 제국 해군의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그가 거느린 바르바리 해적들을 오스만 제국의 정규 해군으로 편입시켰습니다.

Battle_of_Preveza_(1538).jpg

Laureys_a_Castro_-_A_Sea_Fight_with_Barbary_Corsairs.jpg

4년 후인 1537년 9월 28일 그리스 서북부의 프레베자 해전에서 히지르가 지휘하는 오스만 해군은 기독교 연합 함대와 싸웠습니다. 이 전투에서 히지르의 지휘로 오스만 해군이 승리하여 34년 후인 1571년 기독교 연합 함대가 오스만 해군을 격파하는 레판토 해전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군 사령관이 되었다고 해서 히지르는 그의 본업인 해적질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1544년 히지르는 7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서부 해안 지역을 상대로 대대적인 노략질을 벌였습니다. 그가 이끄는 바르바리 해적들은 항구와 마을을 무자비하게 노략질하면서 수많은 주민들을 납치했습니다. 이때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잡혔는지, 바르바리 해적단 소속 갤리선 1척은 포로들을 싣고 오다가 그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살레르노 항구 인근의 바다에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İstanbul_5155.jpg

1546년 히지르는 이스탄불에서 사망했습니다. 오스만 해군의 장군들은 위대한 선배였던 히지르를 기념하는 뜻에서 출정할 때마다 그의 무덤에 들러 참배를 했습니다.

하지만 히지르한테 시달려 온 유럽인들은 그의 죽음을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밤이 되면 죽은 히지르가 무덤에서 나와 시체들과 함께 다시 해적질에 나선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만큼, 죽어서도 히지르는 공포의 대상으로 남았습니다.

표지 사진.jpg

출처: 세계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166~168쪽

출석체크 +1000P
댓글  3
프로필
rank
プロスト
캐리비안의 해적의 헥터 바르보사 캐릭터가 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썰이 있죠..
프로필
rank
전설의왕게
글쓴이
@プロスト 그랬었군요.
프로필
rank
세월아네월아
대항해시대2 시리즈가 생각나는구만.
댓글을 작성하시려면 로그인해주세요.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