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내게 온다해도

목차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프롤로그-다섯 개의 계단
기다림
동행
에필로그-까치야, 너도 도와줘!
엄마, 우리는 다시 꿈꿀 수 있어요-김다린(딸)
이정희 환자의 당당한 외침-이광우(서울대 의대 교수)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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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다시 또 살고 싶은 희망을 꿈꾸는 여인
다들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살기가 어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그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지, 얼마나 감사할 일들로 가득 찬 나날들인지 감탄하고 감동하는 일이 아닐까. 여기에 현재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그 소중함을 일깨우는 한 편의 감동 실화가 있다.
두 손으로 양말을 신고, 사각거리는 연필로 편지를 쓰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도시락을 싸주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바깥으로 나가 두 발로 서서 한껏 햇빛과 바람을 쏘이고……. 이런 일들을 나 스스로,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살아 있음으로 곁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가도 아침 햇살이 마당 가득 퍼져 있는 모습을 보고, 딸아이가 부엌에서 끓이는 버섯 전골 내음을 맡으며 다시 또 살고 싶은 희망을 꿈꾸는 여자, 이정희 씨.
이 책은 난치병으로 언제 세상을 등질지 모르는 삶 앞에서 자신에게 또 가족과 이웃에게 희망의 불씨를 놓고 있는 이정희 씨의 투병기가 담긴 자전적 에세이이다. 치료약도 원인도 알 수 없는 난치병, 세상에서는 루게릭 병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이하 ALS)’을 10년째 앓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아픔과 눈물을 담고 있으면서도 깜깜한 밤하늘에서 더 환하게 빛을 발하는 별과도 같은 기쁨, 밝음, 희망, 사랑, 생의 소중함 등을 가슴 찡하게 전해 준다.
대개의 자서전은 유명인의 것이거나, 아닐 경우엔 흔치 않은 성공담을 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절망적인 삶에 희망의 빛을 비춰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그런 성공담도 없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묘안이 담긴 것도 아니다. 그는 스스로 품고 사는 그 희망을 ‘희망’이라는 단어로조차 부르지 않는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배우고, 조금씩조금씩 이웃을 향해 더 넓게 열어 가며,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기다림’의 시간을 살고 있을 뿐이다.
이정희 씨, 그의 이름 안에서 만나게 될 향기를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출간하였다. 더욱이 오늘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간절한 소망을 안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본문 소개
● 남매의 다툼을 가만히 듣다 보니 사건의 전후를 알 것 같다. 사흘 후면 부대로 돌아가야 하는 아들은 다섯 개의 계단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엄마가 못내 가슴이 아파 어디에선가 합판 한 장을 구해 산꼭대기에 있는 집에까지 애써 끌고 올라온 모양이다. 그런데 정직을 강조하는 딸아이가 문을 열어 주러 나갔다가 동생이 가져온 합판을 보고 잘못했다고 다그친 것이었다. 남편은 아들에게 “울 것 없다. 선택받은 고통 앞에서 그만 울어라.”라고 한다.
- 본문 12-13쪽
● 밤새도록 울며 뒤척이니 남편은 그때마다 몸을 뒤척여 주며 “아이고. 내 인생이 어찌 이리 되었노. 어쩌다 이리 되었나?”라고 탄식한다. 오 분마다 터져 나오는 남편의 “아이고”와 “아휴”가 듣기 싫어 나는 그만 잠 속으로 도망친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어느 바람이 왔다 갔나? 태산 같은 내 시름과 눈물 젖은 가슴을 어느 바람이 다 거둬 갔기에……. 반짝이는 아침 햇살이 마당에 가득 퍼져 있는 양을 문 틈으로 보고는, 나는 또 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 본문 14-15쪽
● 그렇게 우리는 만나면 봄 여행을 기다렸다. 새카맣게 탈 시간 속에서도 하얀 꽃 한 송이를 피우려 분명 갖은 애를 다 쓰겠지. 애쓸 내일의 고달픔을 잠시 내려놓고 싶어 경주 여행을 그처럼 갈망하였는가. 그러나 1997년 봄은 오고 꽃은 피었으나, 서울 장안을 두어 바퀴쯤 돌며 병원 순례를 하고 나서 내 손에 들려 있던 것은 경주행 기차표가 아니라 서울대 병원 신경과 이광우 교수 앞으로 보내는 추천서였다. 경주 대신 나는 서울대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입원 수속을 밟았다.
- 본문 66쪽
● ‘이 지구 어딘가에도 나와 똑같은 증세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어. 그리고 운만 좋다면 그의 남편이나 아내가 로렌조 오일처럼 치료약을 만들어 낼지 누가 알아? 그래, 지금도 연구실에 불을 밝히고 이 병과 싸우는 연구원들도 있어. 비록 지금은 깜깜하고 긴 밤처럼 느껴질지라도 분명 새벽은 올 거야. 머지않아 치료약은 나와. 살아남은 자가 되어야지.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 본문 67-68쪽
● 첫 휴가 나왔다고 군복 차려 입고 대문 앞을 들어서는 아들을 향해 두 팔 벌리고 안아 주지 못한다고 슬퍼하지도 말고. ‘사위 사랑은 장모 사랑’이라고 맨발로 달려나가 맞은 사위에게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떡 벌어진 저녁상을 차려 주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지도 말고. 외손자, 친손자 기저귀는 내가 갈아 준다고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고 미안해하지도 말고. 대야에 물 받아서 씻기 싫어하는 남편의 못생긴 발을 씻겨 주며 킥킥대던 그 저녁을 그리워하지도 말고. 아이들 다 키우고 여행이나 다니자고 처녀 때부터 다짐했던 친구와의 그 약속도 이제는 잊어버리자.
가끔, 아주 가끔 하늘을 향하여 “휴우~.” 하고 긴 숨을 쉬며 슬픔을 숨겨 버리자. 잠수교에 물이 잠기고 거리가 온통 우산으로 뒤덮일 때, 아무도 모르게 하늘로 올린 긴 한숨을 눈물로 모아, 그 눈물을 비와 함께 내리게 하자. 꽃도 울고, 나무도 울고, 지붕도 울고, 비둘기도 울고, 그 날 하룻동안 슬픈 눈물을 그렇게 흘려 보내자.
- 본문 95-97쪽
● 딸이 젖은 얼굴을 비비며 절규할 때 예수님이 생각났다. 병든 이를 돌봐 주었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보며 슬퍼해 주었고,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는 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던 예수님의 그 사랑에 안기고 싶었다. 그분의 사랑을 애써 외면하고 피하기만 했던 시간을 접고, 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 복도에서 내려다보이는 교회로 딸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이야기한다.“젊은 여자가 새벽이고 밤이고 성전에서 울며 기도하기에 누군가 했더니 이 집 딸이었어. 왜 그렇게 우나 했더니 엄마가 많이 아파서였구먼.”
교회 가는 길에서도 이런 말을 들었다. “딸이 엄마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고 있수. 어떤 땐 나도 기도하다가 같이 울었다우.” “하느님이 따님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예요. 우리 귀에도 안타까운데 그 좋으신 하느님이 왜 안 고쳐 주시겠어요?”
- 본문 100쪽
● 만났다 돌아서면 그만인 환자와 간병인 사이지만 끝까지 그 처지를 불쌍히 여겨 돌봐 주는 금희 씨에게 우리 환자들은 몹시 고마워했고, 언제 박종훈 씨처럼 불안한 상황이 될지 모르는 같은 처지였기에 그를 붙잡고 같이 울었다. 다행히 금희 씨의 조카딸이 생각보다 잘 적응해 주어 한시름 놓고 있을 때 그에게는 또 다른 비보가 날아왔다. 매형의 사망, 얼마 후 어머니의 사망. 그는 누구의 장례식도 가지 못했다. 데려다 줄 사람도 없었거니와 갈 수도 없는 몸이 된 그. 담요와 털목도리를 둘둘 감고 산책길에 나가 몇 날 며칠 동안 서울을 향해 통곡하고 들어오는 그를 우리는 대책 없이 바라봐야만 했다.
- 본문 218쪽
● 별이 마당 가득 쏟아지는 날. 기다림의 자리를 펴 놓고 앉아 우리는 곧 오실 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가슴 설레며 기쁜 날을 기다릴 때, 우리 대부분이 누워 있다 해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과 원통한 운명을 풀기는 쉽지 않겠지만, 마침내 ALS도 껴안고, 슬픈 시간도 입 맞추고, 운명도 용서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시간으로 이끌어 가야지. 그리고 내 마음에 들어 왔던 별들을 잊지는 말아야지, 그 날이 내게 온다 해도…….
- 본문 266쪽
● 휴식! 이제 가정은 나에게 더는 휴식처가 아니다. 특히 밤에 자는 시간이 나에게는 피곤을 풀고 쉬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중노동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몇 년은 더 돌봐 줄 자신이 있다. ‘아내보다 사흘은 더 살아야 할 텐데…….’ 나도 모르게 또 이 소리를 중얼거린다. ‘생각해 보면 저 힘든 병을 용하게 버티고 있는 아내도 고맙고, 한마음으로 힘을 보태 주고 있는 자식들도 고맙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좀더 아내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뿐…….’
- 본문 266쪽
● “엄마, 이 병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아시죠? 엄마가 아프시기 전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따뜻한지 몰랐어요. 기억나세요? 엄마 목욕시켜 주러 왔던 스웨덴 봉사자 말이에요. 그 학생이 처음으로 한국에 여행 왔다 우연한 기회에 목욕 봉사를 하게 되었다잖아요. 환자를 목욕시킨 그 날의 감격이 너무 커서 석 달 동안 내내 목욕 봉사만 하다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그 학생 말이에요. 다음해에는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목욕 봉사 해주다가 우리 집에도 온 거잖아요. 엄마, 아무것도 꿈꿀 수 없어 보였던 발병 초기에는 내 삶이 ALS에 눌려 버릴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시 꿈꿀 수 있게 되었어요.”
- 본문 275쪽
♧ 저자 소개
이정희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나 배화여고와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학원 수학 강사로 지내던 어느 날 난치병 ALS가 찾아와 현재 10년째 투병 중이다. 가족으로는 그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해 주는 남편 김인국 씨와 1남 1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