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9년 대중음악 가수 패티김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처음으로 섰다. 세종문화회관이란 어떤 곳이던가. ‘세종’이란 이름처럼 음악인들 자부심의 상징이고 요람 아니던가. 그래서 세종문화회관에 울려퍼진 유행가는 당시엔 충격이며 사건이었다. 그러자 당시 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 김성태씨와 박용구씨가 위원직을 팽개쳤다. 사퇴의 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세종문화회관에 유행가수를 앞세운 흥행자본이 진출한 것은 통탄할 일이다” <iframe width="1" height="1" src="https://adv.khan.co.kr/RealMedia/ads/adstream_sx.ads/m.www.khan.co.kr/pvcheck@x01"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 allowtransparency="true" data-gtm-yt-inspected-7="true" data-gtm-yt-inspected-55135588_83="true" data-gtm-yt-inspected-133708555_69="true" data-gtm-yt-inspected-15="true" style="text-align: right; color: rgb(68, 68, 68); letter-spacing: -0.96px;"></iframe>
이런 소란 속에서도 그해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향수’를 함께 불렀다. 이것이 무슨 암시런가. 그후 세기를 건너와 새천년에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같은 무대에서 대중문화 스타들을 만나는 건 너무나 흔한 일이다. 이미자 조용필 나훈아 같은 대스타 공연은 물론이요, 악극 ‘무너진 사랑탑아’ ‘여로’ ‘울고넘는 박달재’ 등이 아무런 저항 없이 막을 올리고 내렸다. 이달들어서도 세종문화회관에선 하춘화와 들국화 콘서트가 열렸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발행하는 문화공간 2월호에 실린 ‘들국화’를 향한 찬사를 들어보자. “한국 록의 살아있는 전설, ‘들국화’의 그룹결성 20주년 헌정앨범 제작 기념공연이다.…이미 수많은 대중음악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관람객에게 흥분과 열기가 가득한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음향과 소리의 결을 따라 설계된 예술공간에 기계로 증폭된 재생음이 판을 치고 있다. 오히려 극장측이 적극 나서서 이들을 유치하고 있다. 과거 그토록 공연의 질을 따지던 극장들의 자긍심은 어디로 갔는지. 이들은 무엇을 좇는지. 그건 돈이다. 지금 이 땅의 예술계는 서서히 흥행자본에 잠식당하고 있다. 작품성보다는 흥행성을 더 따진다. 관객의 눈치를 보고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고 있다. 자연 순수예술은 자꾸 대중문화에 밀려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대중문화의 무대는 넓고도 넓다. 전파매체 거의가 대중문화로 꾸려가지 않는가. 그럼에도 ‘높고 엄숙한’ 공연무대들이 속속 대중문화에 팔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듯 공연물들을 흥행으로만 치닫게 만들었을까. 그건 기업논리를 내세운 용감무쌍한 정부정책이다. 공연장의 민간위탁과 함께 책임운영기관 지정이 이들을 흥행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예술이란 이름아래 모여 하품이나 하고 있는 단체들, 그들의 덕지덕지 붙은 군살을 제거하고 ‘자율’이란 새살을 돋게 만들자는 취지는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재정자립도 향상이 처음이며 끝이다. 점차 자립도를 높여 언젠가는 공연장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라는 명령이다. 기업논리가 채찍이 되어 공연장을 돈벌이에 내몰고 있다. 그러자 극장마다 지난해 우리는 얼마를 벌었다며 자랑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재정자립도를 재단법인 출범전 19.5%에서 26.3%로 끌어올렸고, 예술의전당은 작년 43억원의 기록적인 흑자를 냈다. 국립극장마저 덩달아 6%에 불과한 재정자립도를 17%로 끌어올렸다며 스스로 대견해 한다. 하지만 돈벌이에 열을 올린 만큼 부작용은 심각하다.
우선 극장마다 온갖 구실을 내세워 대관료를 올렸다. 당연히 가난한 예술인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또 관람료를 크게 올려 대중에게서 예술을 격리시키고 있다. 시간과 공력이 드는, 더구나 흥행이 불투명한 기획공연은 기피한다. 그리고 흥행이 보장된 해외 유명단체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이는 공연문화의 자생력을 황폐화시키는 야만적 폭거이다. 정부는 문화를 상품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거품을 문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문화’는 없고 ‘산업’만 있다. 사물놀이 리듬 하나가 ‘난타’ 등 수많은 문화상품을 탄생시켰음을 상기하라. 문화 없이 어떻게 문화산업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장들의 재정자립도가 50%를 넘을 때는 이미 그 공간은 오락에 취해있거나 흥행자본에 오염되어 거대한 기계음만을 토해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 공연문화는 폐허로 변해 있을 것이다.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에 인파가 몰리자 예술의전당 주변에 ‘삐끼(호객꾼)’가 들끓는다고 한다. 이는 우리 공연문화의 흐름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며 슬픈 풍경이 아닌가.
〈김택근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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