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경제가 힘든이유와 5공 시절 경제부총리 김재익

Q : 2026년 한국경제가 힘든 이유
현재 한국 경제가 힘들고 서민들이 불황을 크게 체감하는 이유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3대 악재와 대내외적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등 일부 대기업 수출은 활발하지만, 그 온기가 서민 경제(내수)로 전혀 흐르지 못하는 'K자형 양극화'가 핵심 원인입니다.이해하기 쉽게 4가지 주요 이유로 나누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지갑은 얇아지는데 나가는 돈은 급증 (고물가와 고금리)
- 내수 침체: 물가가 너무 올라 월급을 받아도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실질 소득)이 줄었습니다.
- 이자 부담: 늘어난 가계부채 상황에서 금리까지 높게 유지되어, 매달 대출 이자를 갚느라 소비할 여력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이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매출 감소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2026년 완화된 서민금융 제도를 활용하거나 비대면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해 가산금리가 가장 낮은 상품으로 직접 이동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금리를 낮추는 가장 빠른 지름길)
2. 세계 무대의 불확실성 (고환율과 지정학적 위기)
- 환율 상승 부담: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수입해 오는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 해외 악재 연쇄 반응: 미·중 무역 갈등과 중동 지역의 긴장 지속으로 전 세계 교역이 위축되고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가중되었습니다.
3. 반도체만 잘 나가는 '착시 효과' (산업 양극화)
- 편향된 성장: 한국 경제 지표는 반도체나 방산 수출 덕분에 버티는 것처럼 보입니다.
- 온기 차단: 하지만 대기업 수출로 벌어들인 이익이 국내 중소기업, 자영업,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지 않아 서민들이 느끼는 실물 경제는 차갑게 식어 있습니다.
4. 늙어가는 사회와 멈춰선 엔진 (구조적 한계)
- 인구 감소: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과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할 젊은 인구(생산인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 성장률 정체: 경제의 기초 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중장기적으로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요약하자면, 밖으로는 글로벌 분쟁과 환율 부담에 시달리고, 안으로는 높은 물가와 빚 갚기 바쁜 가계 사정 때문에 "돈이 돌지 않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전두환 시대에 경제가 좋았던 이유 한국경제의 기틀을 닦은 인물 '김재익'
전두환 정권 초기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故 김재익 박사는 당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1980년대 중후반 호황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제 지식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전권을 위임했던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1980년대 초, 복합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김재익 수석이 단행한 핵심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살인적인 인플레이션(물가 폭등)
진압1980년 당시 한국은 제2차 오일쇼크와 과도한 중화학공업 투자 부작용으로 인해 물가상승률이 30%에 육박하는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습니다. 김재익 수석은 '성장보다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강력한 저물가 정책을 펼쳤습니다.
⬢ 예산 동결(제로베이스 예산): 국가 예산을 전년도 수준으로 묶어버리는 초강수를 두어 정부발 통화 팽창을 막았습니다.
⬢ 고통 분담 유도: 농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추곡(쌀) 수매가를 동결했으며, 임금 인상도 자제하도록 설득했습니다.
⬢ 결과: 취임 초기 30%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은 3년 만에 2~3%대로 떨어지는 기적을 기록했습니다.
2. 시장 경제 체제로의 대전환 (자율과 경쟁)
박정희 정권 시절의 '정부 주도·대기업 특혜형' 경제 모델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판단하여, '민간 주도·시장 경쟁' 체제로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 공정거래법 제정 (1980년): 재벌 대기업의 독과점 횡포를 막고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대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 수입 자유화 조치: 국내 기업들이 독점하던 시장에 외국 상품을 수입해 경쟁시킴으로써 제품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도록 유도했습니다.
3. 대한민국 IT 강국의 밑그림 (통신 혁명)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인터넷·IT 강국이 된 시초에는 김재익 수석의 선견지명이 있었습니다.
⬢ 전자식 교환기(TDX) 도입: 당시 전화 한 대 놓으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했던 낙후된 통신 환경을 바꾸기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 반도체 및 정보화 초석: 미래 산업은 컴퓨터와 정보통신이 이끌 것이라 확신하고 관련 인프라와 기술 개발 투자를 과감하게 주도했습니다.
4. 금융 선진화 시도 (금융실명제 제안)
⬢ 지하경제와 정치 비자금의 원천이었던 가명·차명 금융거래를 막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최초로 기획하고 추진했습니다. 비록 당시 기득권 정치인과 재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당대에는 완벽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금융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화두를 던져 훗날 제도 도입의 결정적인 모태가 되었습니다.
⬢ 김재익 수석은 안타깝게도 1983년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으로 현장에서 순국하며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다져놓은 '저물가·저금리'의 안정된 경제 구조 덕분에, 한국 경제는 1980년대 중후반 찾아온 세계적인 호재인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을 만나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체질 개선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호황 기회가 와도 살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오늘날 주류 경제학계의 평가입니다
<관련기사/자료>
대한민국 경제도약의 초석을 놓았던 故'김재익'수석
https://m.blog.naver.com/ending72/222547021741
[데스크 칼럼] 김재익 경제수석은 어떻게 인플레와 싸워서 승리했나-조선일보(볼사람만 보세요)
https://biz.chosun.com/opinion/desk_column/2022/09/03/NVRRUD5HQBCOLGQLVCYV33VFYI/
김재익
https://namu.wiki/w/%EA%B9%80%EC%9E%AC%EC%9D%B5
“당신이 경제대통령이야” 대한민국 미래지도 그린 김재익-신동아
https://shindonga.donga.com/economy/article/all/13/3159841/1
제 5공화국 경제의 심장 '김재익' 전 경제수석비서관-대한민국 기록관
https://www.pa.go.kr/portal/contents/stroll/special/view.do?bd_seq=23
<0> 부탁입니다 제대로 된 사람을 써 주십쇼. 사람 찌르던 칼을 주방에 쓰다뇨!
이병태가 뭡니까 이병태가 진성매국노 이병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