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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차에 만난 사람(1966년) - 위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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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성공
    2026-03-14 () 02:12조회 : 49추천 : 2



                     밤차에 만난 사람

               1966년 그랜드레코드


         월견초 작사 이인권 작곡 위키리 노래

    1.밤차에 만난 사람 이름 몰라도
      밤차에 만난 사람 간 곳 몰라도
      우연히 부딪치던 검은 그 눈길
      어이해 내 가슴에 젖어있는가
      그날 밤 그 밤차가
      아 ~ ~ 원망스럽소 원망스럽소

    2.밤차에 만난 사람 다시 또 한번
      밤차에 만난다면 만나진다면
      가슴을 애태우던 지난 세월을
      하나도 남김없이 고백하련만
      밤차는 오고가도
      아 ~ ~ 만날 길 없네 만날 길 없네

    「위키 리께서는 한국에서 가수활동을 하시다가 미국 이민을 오셔 이곳 로스엔젤스
    한미 TV방송에서 주 5일 저녁 골든타임에 10년간 2시간프로그램의 MC 앵커로서 한인교표들 위해
    생방송으로 인기를 받아 오시던 중 2년 전부터 건강이 나빠져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과는 친분이 있는지라 몇 번이고 찾아뵙고 져
    했는데 그렇게 많이 편찮은지를 몰라 오늘은 제가 예고 없이 직접 집에 찾아뵈었습니다,
    오랫동안 위키리를 사랑 해 주신 분들 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사신다면서 눈시울을 머금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 소식 전해드립니다.

    위키 리 오랫동안 들어오던 이름이다. 1962년 가수가 되고 곧이어 1963년 최희준, 유주용,
    박형준과 함께 네 사람이 국내 최초의 음악 동아리 포클로버스 (네잎클로버)를 결성하기도 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 서라벌예대 출신의 위키리를 포함해서 서울대 법대 출신의 최희준, 서울대 문리대 출신의
    유주용, 외국어대 출신의 박형준, 당시로서는 그리 흔하지 않던 학사출신 가수들로 구성된 이들 음악동아리는
    관심을 끌며 외국의 유명가수들의 내한 공연을 가질 때면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고 음반을 제작
    판매하기도 했다. 이 네 학사가수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가수들이었다. 최희준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고 유주용은 윤복희의 남편이자 그 시대의 인기 가수 모니카 유 (유인경)의 동생이다. 

    포클로버스 구성원 오늘의 주인공 위키리는 방송국에서 노래를 부르고 

    MC로 등장하면서 1960년대 중반 본인의 이름을 딴 DBS 동아방송의
    달려라 위키리 에서 DJ를 맡았는가 하면 영화에도 출연했다.

    작사가 월견초
    월견초 노랫말이 지닌 특징은 고향, 서민의 삶과 애환, 가족애, 사랑과 이별의 아픔 등으로 나타나는데
    작품 속에는 이런 정서들이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있다. 한국가요사 초창기의 원로작사가였던
    반야월 선생의 회고록 불효자는 웁니다 에는 후배 작사가 월견초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보인다.
    서울 종로구의 수도극장(스카라극장) 주변에는 레코드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했고,
    가수와 배우들이 포진했으며 그들이 주로 집결하는 다방과 술집이 많았다. 

    이 도로는 여름에 폭우가 쏟아질 때남산의 물이 마치 하천처럼 흘러내려 

    청계천으로 유입되었다. 그래서 대중음악인들은 이 거리를 스카라계곡이라 불렀다.
    해만 저물면 아리랑집, 두꺼비집, 초막집, 울산집, 경상도집, 청주할머니집, 

    고모네집, 향원집, 고령집 등 대폿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런 술자리에 반드시 필수양념처럼 자리를 차지하는 멤버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작사가 월견초였다. 미리 행방을 알리지 않고
    어느 술집에 가더라도 어떻게 알고 찾아와 문을 콰당탕 열면서 들어왔다. 

    들어서면서 하는 말이 지가 쫌 늦었지예 죄송합니더.
    그리곤 털썩 주저앉아 빈 술잔을 내밀며 어서 술을 달라고 재촉했다. 

    선배들이 놀린답시고 아니, 누가 자네더러 이 자리에 오라고 했나 라고 하면
    지는 진작부터 선생님들 전속 아입니꺼. 마마 술이나 어서 돌리시이소.라고 

    응답해서 모두들 박장대소를 했다고 한다.
    월견초가 막걸리를 한잔 쭈욱 들이켜고 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청해서 일어나 자, 노래 한 곡조 불러야지예. 지가 남인수 선생의
    무정열차를 한곡 하겠십니더 라면서 혼자 목청을 뽑았다고 한다. 

    가요계 선배들을 언제나 깍듯이 모시고 예의를 갖추며
    선생님, 대포 한잔 쪼매만 하입시더 오늘 몇 푼 생깃십니더 라고 하면서 

    재촉하던 그립고 아름다운 후배로 기억한다.

    반야월 선생이 월견초를 처음 만난 것은 1957년 부산극장에서 열린 

    고복수 선생의 은퇴공연무대였다. 월견초는 그날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로 

    반야월을 찾아와 첫 인사를 드렸다. 지는예, 부산에 사는 작사가 지망생 월견초라고 합니더.
    선생님을 너무 존경합니더. 예명도 선생님의 반야월에서 월(月)짜를 따서 

    제 예명의 첫 글자로 넣었심니더. 지도 서울 가서 일해보고 싶습니더. 

    선생님께서 잘 이끌어 주시이소. 반야월 선생은 월견초에 대한 이런 

    추억을 회고하고 있다. 작사가 정두수 선생의 회고록
    노래 따라 삼천리에도 월견초 이야기가 등장한다. 정두수는 월견초를 

    무슨 짓을 해도 밉지 않는 사내, 천재성이 번쩍이는 익살스러운 괴짜
    언제나 빈털터리 주머니에 한 푼의 돈만 생겨도 술잔에 돈을 쓸어 넣는,

     술에 절어 사는 김삿갓이 아닌 월삿갓 으로 표현한다.

    밀양 출생으로 부산에서 성장했고, 서울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 작사가 월견초를 추억한다.

                                        자료출처 - 네이버

    (유투버에서 김응석님의 음원을 공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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